표절시비 리풀레이
표절시비가 다시 등장했다. 대선후보 중 한 사람(안철수)이 표절의 덫에 걸려 있다. 그게 박사학위논문에서 발생한 사건이란다. 더구나 도덕성을 엄청 신나게 떠들어 대는 사람에게서 문제가 나타나 ‘검증’이 어떻고 저떻고 하며 세상이 떠들어 댄다. 어이가 없다. 진실여부 이전에 그런 구린내가 난다는 자체가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겠다는 인물의 행각에서 들어난 것이라서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집필지침서가 있다. 미국의 유명 출판사 ‘랜덤 하우스’가 펴낸『랜덤 하우스 편람 Random House Handbook』은 대학생들의 글쓰기에 유용한 안내서이다. 학생들의 소논문(term paper)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어떤 문체와 계략으로 성공적인 논문을 만들 수 있는가를 철저하게 충고해주는 학생들의 필수교본이다.
그런가하면 미국의 대학교수들 책상 위에 반드시 비치되어 있는 세계적 석학 모임 ‘현대 언어학회’ 발행의『엠. 엘. 에이. 문장교범 MLA Style Sheet』이라는 소책자도 있다. 각종 사전과 함께 학자와 교수들이 논문집필 현장에서 애용한다. 다름 아닌 철자, 약자, 구두점 등 문장작성 규칙의 설명서이기 때문이다. 문법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행여 본의 아니게 저지를 지도 알 수 없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자기방어용으로 관습상비하는 매뉴얼이다.
논문을 집필 할 때 참고 참조하는 문헌이나 기록 등에 관한 전거(典據) 제시의 지혜와 예의를 위해『랜덤 하우스 편람』으로부터 유익하고 적절한 내용을 차용 제시하여 표절시비에 참고토록 권유하고자 한다.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어떤 문서를 작성할 때 표절행위는 몰염치한 도둑질이다. 문서를 작성하는 필자는 자신이 만드는 글에 대한 절대적 의무를 지닌다. 그것은 표절행위에서 탈피하라는 것이다. 남의 글이나 말이나 생각을 제 멋대로 인용하거나 활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곧 남의 것을 훔치는(steal) 일을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타부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표절행위는 인격적 도덕적 학문적 해저드(hazard)로 간주된다. 그러니 출처(source)를 밝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아무런 훼방을 받지 않고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애를 쓰면서 자기가 빌려 쓰는 용어와 생각이 기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흔히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즉 주석(notes)과 참고문헌목록(bibliography)으로 자신이 참조한 자료를 충실히 제시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주석이야말로 아주 고약한 이름이 된다.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지나치게 꼼꼼하고 어쩌면 쓸데없이 복잡한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괴롭고 곤혹스러우면 주석을 건너뛰고 싶은 충동을 받을 수 있다. 빌려 쓴 남의 생각이 비록 전해들은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건 물론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주석이 실제로 필자의 제시물이 갖는 효과를 강화해준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무언가를 조사하고 탐색하는 작업이 비록 귀찮다 해도 그게 제대로 밝혀지기만 하면 그 사실이 호의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독자는 누구나 진퇴유곡의 궁지에서 빠져나올 목적으로 만들어낼지도 모를 주장에 의해서 보다 기준에 맞는 훌륭한 작품에 대한 참조에 의해서 더 감명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논문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승인을 받지 않거나 감사의 인사도 없이 남의 말이나 생각을 취택하는 중대한 윤리적 범법’인 표절행위를 피하는 것이다. 이론상 독자는 필자 자신의 생각이 분명히 어디에서 끝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정확하게 인용하고 요약하고 제시함으로써 필자가 차용한 모든 것을 추적하면서 필자가 차용한 것들을 양심적으로 신중히 취급했는지를 알아보고 필자의 주석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실제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라도 필자의 작품을 아주 철저하게 점검하는데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표절행위를 피하는 요점은 표절에 포획당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는 것만이 아니고 부정직(dishonesty)의 충동을 억누르고 멀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의적인 부정직은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승인을 받지 않은 학기말 논문전체를 돈을 주고 산 사람은 누구나 별 생각 없이, 서둘다가, 기회포착의 순간적인 느낌으로 ‘사소한’ 윤리적 실수에 빠져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의 작품 90프로 정도가 사실상 독창적일지라도 그건 어쩔 수 없이 표절이 되는 것이다. 마치 은행 돈 겨우 2달러 39센트를 강탈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당연히 은행강도인 것과 똑같다.
그러나 강도와 달리 표절행위자는 자기가 무엇을 잘 못 하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 한다. 선생님으로부터 백과사전의 글을 복사하라는 지시를 받은 학생이 인용부호와 인용출처를 사용할 필요성을 결코 알지 못 할 수 있다. 인용문을 그냥 알기 쉽게 바꿔놓든가 어떤 생각을 요약해서, 즉 인용이나 생각을 자기 말로 바꿔서 공공소유물로 바꿔버린다. 그런가하면 생각의 출처를 인정하면서도 남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그의 말을 차용했다는 것을 표시하기에 실패한다. 더구나 지저분하게 주석을 달아 표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사용한 주석은 개인적 관찰과 참고한 책의 내용 간에 적절한 구별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글도 역시 판별이 되지 않는다.
사실과 의견 사이의 차이를 잘못 생각하는 실수로 표절에 빠져드는 수도 있다. 예컨대 그런 경우란 문학작품에 대한 유명비평가의 의견이 매우 권위가 있기 때문에 주지된 사실의 범위에 속한다고 생각해서 승인 없이 그걸 바꿔 쓰는 경우이다. 이런 과오야 대체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곧 표절에 대한 충실한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좀 장황하기는 하지만『랜덤 하우스 편람』에 등재된 다음 글들을 읽고 그 내용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히기 쉬운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원문(source): “유럽 패거리에서 익살꾼(joker)은 이태리였다. 한동안 독일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 희망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이 무솔리니정권하에서 사라져버렸다. 1935년에 이태리는 에티오피아를 침략하면서 아프리카 선점에 뒤늦게 참여했다. 그것은 분명히 회원국 간의 공격에 대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의 약속위반이었다. 강대국으로서의 프랑스와 영국, 지중해연안 강국, 그리고 아프리카식민지강국들은 국제연맹에서 이태리에 대항하는 영도력을 지녀야 했다. 그러나 자기들이 독일에 대한 동맹가능성을 멀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너무나 유약하고 냉담했다. 결과는 아주 나빴다. 국제연맹은 침략을 막지 못 했고 에티오피아는 독립을 상실했으며 이태리는 결국 소원되었다.”
이 글의 세 가지 이설(version)을 따져본다.
첫째 이설: “이태리는 유럽의 조커였다고 말할 게다. 이태리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그건 분명히 국제연맹의 약속위반이었다. 하지만 이태리에 대항하는 영국과 프랑스가 영도력을 취하려고 한 노력은 유약하고 냉담했다. 그런 강대국들이 히틀러가 재무장한 독일에 대항하는 동맹을 소원하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논평: 분명한 표절. 인용된 사실은 공인된 지식이지만 도둑질한 문구는 그렇지 않다. 필자가 원래의 출처와 자기의 말을 짜깁기한 것이 표절의 결백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라.
둘째 이설: “이태리는 유럽 떼거리에서 조커였다. 1935년에 무솔리니치하에서 이태리는 에티오피아를 침략하면서 아프리카 선점에 뒤늦게 참여했다. 제이. 엠. 로버츠가 지적하듯이 이건 국제연맹의 약속 위반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대항하는 동맹을 소원하기를 원치 않으면서도 에티오피아 사건에 단지 유약하고 냉담한 반대를 피력했을 뿐이다. 결과는 로버츠가 관망했듯이 ‘최악의 가능성: 연맹은 침략을 막는데 실패했고 에티오피아는 독립을 상실했으며 이태리는 결국 소원되고 말았다.”
논평: 역시 표절. 로버츠로부터의 두 개의 올바른 인용은 다른 사람의 승인받지 않은 문구의 도용을 위한 일종의 구실(alibi)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구실에는 힘이 없다. 로버츠의 말 가운데 어떤 것은 글쓴이의 말로 다시금 나타나 있다.
셋째 이설: “1933년에서 1939년의 기간에 독일의 재무장과 군국주의에 관한 글이 많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독일의 우월성은 결코 처음부터 다 잘 알고 있는 결론은 아니었다. 사실은 한두 가지 일이라도 어렵게 나타났다면 세력균형이 히틀러에 대항해서 쓰러졌을 수 있었다. 독일과의 동맹을 향한 이태리의 인력을 예로 들자. 그 동맹은 아주 불가피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는 이태리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는 희망으로 에티오피아침공에 관한 비판에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제이. 엠. 로버츠가 ‘독일과의 동맹을 소원히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유약하고 냉담하게’라고 말했듯이 국제연맹에서 이태리에 반대했던 것이다. 이태리와 프랑스와 영국이 어느 정도 공통관심을 유지했다고 생각해 보라. 히틀러가 30년대 후반에 놀랄 만큼 허세를 부리며 깡패처럼 사라질 수 있었겠는가?”
논평: 표절 아님. 필자는 로버츠가 언급한 공공사실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로버츠의 결론을 자기의 것으로 간주되도록 하지 않았다. 하나의 분명한 차용은 적절한 승인을 받은 것이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