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게 어찌 그리도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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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
그 바람에 애꿎은 민초들의 가슴에 응어리가 생길 판이다. 모처럼 투표권자의 절반 이상이 선택한 여성 대통령이 첫 걸음을 내딛는 판에 어쩌구저쩌구 욕불급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무리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며 내둥 잘 나가는 당선인과 인수위원들까지 심란하게 만들고 있으니 더욱 민망한 것이다.
남의 밥상에 콩 놔라 팥 놔라 성가시게 참견하고 나서는 건 꼴불견이다. 대선이 끝나고 겨우 한 달이 지났다. 당선인이 숨을 골을 시간의 여유도 길지 않았다. 더구나 인수위가 활동하기 시작해서 겨우 여남은 날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발족한 당일에 대변인 발표가 밀봉으로 되었다는 트집부터 시작한 불평이 꼬리를 물고 있다. 언론의 욕심발이 큰가 보다.
역대 여러 정부가 자리를 잡기까지 별 말도 못하던 경우가 새삼 떠올라 요즘 욕심에 눈이 멀다 싶은 ‘언론정책 질타’에 약간의 현기를 느낀다. 지난 정부들의 인수위 구성이나 기능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덤벼들지 못한 주제에 이번에는 팔 걷고 나서 밤 놔라 대추 놔라하고 주책을 부리는 모습은 칭찬받기 어렵다.
섣부른 페미니스트의 억지가 아니라도 여성대통령이라고 만만하게 따져드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조급한 요구조건이 나열되는 형국이 마음에 탐탁하지 않은 것이다. ‘빨리빨리’는 졸속에 빠져들기 일쑤이다. 그런 족속이라고 이미 낙인 된 만큼이나 아름답지 못한 닉네임 그대로 추썩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당선인의 보안의식이 이른바 ‘국민의 알 권리’ 충족에 모자라고 기자들의 ‘취재능력 발휘’에 흡족하지 않을망정 그건 ‘서두르다 망치는 짓’보다는 훨씬 ‘훌륭하고 알찬 미덕’인 것이다. 비밀주의로 몰아붙이면서 내 욕심에 들지 않는다고 짜증스러워 할 게 결코 아니다. 당선인의 특성을 존중하고 그걸 장점으로 수용하면서 그의 정치적 수렴상황을 너그럽게 관찰하는 지혜가 아쉽다.
카운터 파트너로 대접받을 참인 야당에서도 성급한 요구에 함몰하는 우책(愚策)일랑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 게 좋다. ‘대통합’을 내걸면서 자기들과 협의하지 않는다는 불만은 정녕 언감생심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일부러 치지도외한 게 아니라면 멍석도 깔기 전에 마당부터 내주라는 건 과도한 욕기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밥상 차릴 동안 기다려야 밥맛도 난다.
이러니저러니 요구하는 게 적지 않은 데다 종편방송에 나온 평론가 군상들은 제멋에 겨운 발언으로 역시 욕념의 시녀가 된 몰골이 사납기도 하다. 언제부터 우국충정이 그토록 충천하는 기세를 지녀왔는지 당선인의 국정운영이 이러해야 하느니 정부인사 선정은 저래야 하느니 하고 구변자랑에 바쁘다. 공론화가 필요하다,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공약실천의 우선순위도 정하라고 여당에서마저 소란을 피워댄다.
그렇다. 어젠다의 공론화, 국정참여자의 품격검사, 약속이행의 프라이어리티 결정 등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요구나 요망은 당연하다. 하지만 프레임 워크는 많은 사람이 덤벼들고 많은 의견이 나온다고 해서 잘 다듬어지는 게 아니다. 자칫 배가 산으로 가거나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차분하게 알뜰하게 틀을 짜내도록 기다려 줘야한다. 너무 욕심만 부리지 말아야한다.
급기야 박근혜 당선인이 직접 한 마디 했다. 공약수정론에 대한 반대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공약은 새 정부 출범 뒤에 할 일이라고 못 박았다. 괜스레 가타부타 떠드는 게 옳은 일이 아니라는 뜻을 뚜렷이 밝혔다. 백 번 옳다. 인수위원장도 공약문제에 시시비비하지 말자고 출입기자들에게 권유했다. 그의 말대로 공약을 지키지 말라든지 폐기하라든지 하면서 욕심을 부리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결례일 뿐이다.
그러니 대통령 당선이 한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자유의 축복이라면서 “조국이 국민 여러분에게 무슨 일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라고 천명한 케네디의 취임사를 음미하는 아량을 차라리 욕심내고 싶지 않은가. 그의 과감한 용기와 민주주의 의식은 미국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상존하고 있다.
그보다 더 일찍이 중세시대에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계승 백년전쟁을 종식시키고 프랑스의 국위를 만천하에 드높인 여성도 있다. 잔 다르크 말이다. 그녀의 지도력을 상기한다면 우리도 이제 확고한 ‘신뢰와 약속의 여성 대통령’이 출현하는 게제를 만드는 욕심을 부리는 게 오히려 현명한 국민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염불위괴하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