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 찰 일만 남았나
그런데 그런 기쁨도 자랑도 바람도 가냘픈 아침이슬이 될까 싶어 걱정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표류하면서 국정이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간신히 국무총리 하나를 세워놓은 채 나라가 제 구실을 못 하고 쩔쩔매고 있으니 말이다. 짠돌이 야당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렇단다.
흔해 빠진 ‘발목잡기’에 걸려 새살림을 차리는 박근혜정부가 어수선하다. 이 뒤숭숭한 사태는 무엇보다 국가안보 책임자가 덧없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판국으로 몰아간다. 이른바 일꾼벌이라는 장관후보자 여러 사람도 속절없이 청문회에서 난도질당하는 형편으로 밀려가고 있다.
오죽하면 총리가 여야지도부를 찾아가 통사정을 했단다. 그래 그런지 어제 새누리와 민주 두 당이 고위정책회의를 열고 각기 당내의견 수렴작업을 한 모양이다. 어느 여당 국회의원은 ‘분리처리’하자는 소견을 내놓았는가 하면 야당 중진의원은 양당지도부가 전권을 가지고 서둘러 해결할 것을 주문했단다. 정부조직법은 법률형태라서 합의로 해결해야 된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국민화합을 앞세운 정부모토가 그러니 더욱 그래야 한다. 비비고 꼬아대는 야당의 행태나 어물쩍하니 멍청한 여당의 행동은 ‘못된 버르장머리’에 지나지 않는다. 부질없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야할 개정안이라면 차라리 국정을 포기하는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긴 택시를 대중교통이라고 우겨댄 미련하고 무식한 집단의 태도일진대 “삼가 일러 무삼하리오”이다.
그래도 그럴 수만은 없다. 국가업무의 공백과 차질현상은 중차대한 국면의 세계상황에서 우리에게 결코 이롭지 않을 뿐 더러 자칫 위기국면을 자초할 수도 있으니 걱정이 앞선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이 언제부터 그토록 대단해서 그게 그렇게 큰 걸림돌이 되었나. 권력남용이 두려워 정부조직의 개정을 반대한다니 지레 겁먹는 버릇은 어디에서 생겼는가. 그런 이치를 언제 터득했는가 묻고 싶다.
어느 야당출신 광역시장 말마따나 찰밥을 짓든 흰밥을 짓든 우선 밥을 짓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질질 끌고 가면서 욕을 먹어야 배가 부르다고 느끼는 상상력은 망상이고 허상이고 잡상이다. 마치 신구정권이 정말 ‘어정쩡한 동거’를 하다 싶이 된 마당에 국회가 하는 꼬락서니는 그야말로 저들이 돈 안 들이고 즐겨 쓰는 상투어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제 식구 체포동의안은 터보 제트엔진, 아니 번갯불처럼 재빠르게 작동시키면서 정부조직은 글자 그대로 매머드 ‘정치실종’의 실상을 드러내놓고 작위적 지연작전으로 일관하니 그게 바로 여성 대통령을 골탕 먹이자는 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어느 팔순 노인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분이 내뱉는 욕지거리가 듣기는 민망해도 ‘오줌 똥 가리기’마저 서툰 정상배들의 행위는 불가불 ‘노 굿’ 일변도의 작태이자 ‘갓 댐, 넘버 텐’ 일향성의 행각이 아닐 수 없다.
예전 같으면 ‘직권상정’이나 ‘단상점거’라는 폭력적 행사로 어쨌거나 일을 매듭지었을 것이라는 여당 대표의 말이 섬뜩한 과거회상으로 들리면서도 한편 그리운 추억처럼 가슴을 간지럽힌다. 국회선진화를 외친 자신들의 알량한 체통이나마 건져 보려는 심뽀에서 하는 말일 거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입놀림이다. 그러니 그런 짓을 감행하지 않아 다행이긴 하다.
그나저나 이렇게 정치적 서커스만 하고 있으면 거친 파도처럼 출렁대는 글로벌 경제의 난기류를 헤쳐 나가는데 어떤 지혜와 기술과 전략이 소용될 것인가 우려스럽다.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도 집안 살림살이가 엉망이 되어 버리면 무슨 뽀족한 수를 써도 까닥하면 나무아비타불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괜스레 쪽박 찰 날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정신 차리자 모두가.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