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잇단 인사실패…책임지는 사람 없나
靑인사위 '유명무실'… "'대통령 뜻'이라고 밀어붙이면 바꾸기 어려워"
정치권 안팎에선 사전 검증 부실 등 박 대통령의 인사(人事) 방식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박 대통령 주변이나 청와대 내에선 이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사람 없이 '개인 탓', '제도 탓'만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비판이 가중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박 대통령에 의해 정부 고위직에 내정 또는 임명됐다가 '자진 사퇴' 형식으로 낙마한 인사는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와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내정자(이상 사퇴 순) 등 4명이다.
여기에 지난 1월 말 당선인 신분이던 박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후보자직을 자진 사퇴한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더하면 새 정부의 차관급 이상 고위 인사로 지명됐던 인물 가운데 벌써 5명이 교체됐다.
게다가 청와대는 공식 확인을 꺼리고 있지만, 앞서 대통령 비서실 구성 과정에서 비서관 내정이 번복되거나 철회된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박 대통령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하는 직책 가운데 10개 정도가 이런저런 이유로 주인이 바뀐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정 또는 임명된 인사들의 잇단 사퇴 배경은 그 인원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앞서 김용준 전 위원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두 아들의 병역면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확산되자, "내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치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쳤다"며 총리 후보자 지명 닷새 만인 지난 1월29일 사퇴했다.
김종훈 전 장관 내정자는 지명 보름 만인 이달 4일 국회의 정부조직법 개정 지연 상황을 비판하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는 말로 사의를 표시했다. 정치권에선 김 내정자의 미국 국적 시비와 가족의 투기 의혹 등이 불거진 점 또한 그가 사퇴를 결심케 된 주요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황철주 전 내정자는 중기청장 취임시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데 따른 부담을 이유로 내정 나흘 만인 지난 18일 사퇴 의사를 밝혔고, 김학의 전 차관은 '사회지도층 성(性)접대 의혹' 사건에 자신이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모든 게 사실이 아니지만 내 이름과 관직이 거론된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부과된 소임을 수행할 수 없다"며 임명 8일째인 21일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김병관 전 장관 내정자는 국회 인사 청문 과정에서의 각종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해오던 중 지난 19일부터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미얀마 자원개발 업체 KMDC 주식 미신고 및 은폐 의혹이 일자 22일 "그동안 국민에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며 장관의 꿈을 접고 말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김종훈 전 내정자 사퇴 때만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시했을 뿐 다른 인사들의 사퇴와 관련해선 '공식입장'을 내놓은 바 없다.
박 대통령은 김종훈 전 내정자 사퇴 당시 대국민담화를 통해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에 대해 제기된 각종 의혹 등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정치권의 정부조직법 개정 협조만을 촉구했었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의 총리 후보자직 사퇴 당시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이후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잇단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인사청문회는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좀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니냐", "청문회가 '신상털이'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공직에 나서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었다.
당시 야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청문회 무력화 시도'라고 비판했었지만, 최근 여야는 오는 6월까지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키로 합의했다.
이밖에 황 전 내정자의 중도 하차 이후엔 안전행정부에서 고위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처분토록 하는 '백지신탁' 제도를 '보관신탁' 제도로 개정키 위한 논의에 착수하기도 했다. "주식 백지신탁 제도가 기업인 출신 인사들의 공직 진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황 전 내정자 인선에 앞서 청와대가 주식 백지신탁 제도를 정확히 주지시키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청와대 측은 "황 전 내정자가 제도를 잘못 이해했던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또 청와대는 김 전 차관 연루설(說)이 제기된 성 접대 사건과 관련해선 사퇴 당일에도 "개인 문제"라며 계속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아울러 "직무 수행에 결정적 하자가 없다"던 김병관 전 내정자가 사퇴한데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표명 없이 "국가·국민의 안위가 위급한 상황"이라면서 김관진 장관의 '유임' 사실만을 발표하고 넘어갔다.
이와 관련, 여권 내에선 "일련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내에서조차 인사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구체적으로 제기되지 않고 있는 건 박 대통령이 사실상 인사의 모든 실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연초 인수위를 통해 내놓은 청와대 조직 개편안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청와대는 박 대통령 취임 뒤 정부조직법 개정 지연의 영향으로 인사위를 공식 출범시키진 못했지만, 허태열 비서실장과 관련 수석비서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식' 인사위를 가동하며 정부 부처 차관 및 외청(外廳)장 인선 등을 진행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인사위에 허 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만 참여한다는 점을 들어 "상향식 후보 추천보다는 하향식으로 인선 논의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사전에 일부 문제점이 드러난 인사라고 하더라도 인사위에서 누군가 '대통령의 뜻'이라며 밀어붙인다면 바꿀 방법이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표방하는 '시스템 인사'가 이뤄지려면 인사위 구성원도 그렇고, 그 운영방식 또한 좀 더 개방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도 "김 전 차관의 성 접대 사건 연루설 등이 사전에 걸러지지 못한 것이나, 김병관 전 내정자가 뒤늦게 사퇴한 것 역시 청와대 안에서 이 사람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기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냐"면서 "그게 대통령의 뜻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모양새로 가고 있다. 이건 분명히 참모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차제에 청와대 내 인선 논의와 관련해 참모진의 역할 범위 등을 확실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