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2016-07-28     박미련 수필가

집에 들어온 내내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있다. 안절부절, 이리저리 뭔가를 찾더니 허겁지겁 달려 나간다. “자기, 뭐가 없는 거야?” 내 말을 메아리인양 받아들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몇 분이 지났을까, 어깨를 늘어뜨리고 들어오는 남편, “열쇠가 없어졌어. 분명 엘리베이터 탈 때까지는 있었는데 증발해 버렸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편은 자신의 기억이 미덥지 않은지 시간의 테잎을 한참 전으로 돌렸다. 차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동선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짧게 시간을 분절시켜 그 순간으로 들어가 보려고 애썼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주말에 함께 운동하기로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었단다. 잠깐 동안 친구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과 이제는 비등하게 대결을 펼쳐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즐거웠다는 걸 보면, 그이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은 벌써 주말로 달려가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는 동안 소지품을 챙기고 차 문을 잠그는 사소한 일들은 이미 의식 밖에 있었을 것이다. 몸에 밴 습관에 따라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겼을 뿐이다. 열쇠는 당연히 호주머니에 넣은 것으로 기억을 정리했을 터이고.

이쯤 되니 열쇠를 들고 있었다는 설익은 기억이 엉킨 실타래가 되고 열쇠의 행방은 애초에 모르는 일처럼 여겨졌겠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고 혹시 집에서 흘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 시간 넘게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소파에 앉은 기억도 없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감안하여 흔들고 더듬고 뒤집었다. 그러나 감쪽같이 사라진 열쇠를 포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남편의 건망증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정도이다. 친구들 사이에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가 참 많다. 서울에서 유학하던 대학시절에는 그의 집이 사랑방처럼 쓰였단다. 니 것 내 것 나누지 않는 편안한 성격 덕에 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친구들도 많았다고. 한때는 네 명이 같이 살았단다. 열쇠는 하나인데 들고나는 시간이 제각각이었으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겠다. 네 개를 더 만들어 친구들에게 주었단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건망증이 심한 그의 열쇠를 시작으로 친구들의 그것까지 차례차례 사라져 갔단다. 남은 열쇠는 딱 하나, 까칠한 친구의 것만 남았는데 어느 날 친구에게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가 무참히 거절을 당했단다. 잃어버린 사람이 책임 질 일이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것을 빌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하더란다. 키에르케고르에 심취해 있었던 친구는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것이니, 친구에게 의존할 생각일랑 접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설익은 철학이 친구들을 당혹케 했다. 싸늘한 구들장보다 더한 냉기가 그들 주변을 휘감았겠다.

다행히 지금은 여러 해를 묵혔다가 만나도 어제 만난 사이처럼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었지만 그 땐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등을 보였단다. 아직도 만나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그 때 그 열쇠사건으로 화제의 꽃을 피우는데, 덜렁대는 남편과 잘 챙기는 친구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넓은 강이 가로막혀 있는 기분이었다고.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얹혀사는 주제에 내 것 운운했으니 얼마나 모순이었냐 말야.” 이제와 얘기지만 주인인 친구를 힐난할 처지가 하등 아니었는데 무에 그리 당당했는지 모르겠다며 남편의 친구는 눈을 찔끔거리며 씩 웃는다. 오해보다 묵은 정이 훨씬 깊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뒤늦게 속내를 드러내는 친구 덕에 다시 좌충우돌, 풋풋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남편의 친구들은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건망증 때문에 소중한 친구를 잃을 뻔 했으니 아무튼 남편의 건망증은 해도 너무 하다. “그나마 그것 두 쪽은 달려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것도 뗐다 붙였다 하는 거였다면 벌써 잃어버리고 사내구실도 못할 뻔 했다는 친구의 말에 우리는 맞장구를 치며 방안이 떠나가랴 웃었다.

그렇다고 그가 노력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건망증 때문에 실수가 잦으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신을 믿지 못하니 무슨 일인들 해낼 수 있었겠는가. 날밤을 새워가며 완성한 과제를 그만 시내버스 선반에 두고 내려 낭패 보는 장면이 꿈속에 등장하여 마치 현실인양 그를 괴롭혔단다. 그래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신경을 필사적으로 붙들려고 노력하였다.

실수가 덜 한 건 사실이지만 스트레스 지수는 하늘을 찔렀다고. 온 신경은 살아 주변 것들을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하느라 정작 몰입해야 할 순간을 방해하더란다. 다시 신경을 놓았더니 친구처럼 자기 곁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는 이 건망증! 우산을 들고 학교를 갔다가 몇 군데 들러 집에 와 보면 으레 우산은 남의 차지가 되고 결혼예물시계를 보시 한지도 까마득한 옛 일이 되었다. 그의 팔목이 허전하여 다시 마련하여 주었더니 괜한 짓을 했다면서 며칠을 나무랐다.

가족이 미국 서부를 여행하였을 때 일이다. 그랜드 캐년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오후였다. 해가 어스름이 지고 있었으니 주변이 낯설었다. 막연한 두려움도 들었다. 그러나 길 앞을 막아서는 사슴과 인사하며 광활한 대자연을 보기위해 서둘러 올라갔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그만 쩍 입이 벌어졌다. 광활한 협곡을 만든 신의 재주를 눈 아래 굽어보니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막연한 절대자가 거대한 힘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느낌이었다. 싸늘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하나 둘 길을 뜨기 시작하자 우리도 내려갈 차비를 서둘렀다. 떨고 있는 아이들부터 우선 차안으로 들여보내고자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차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그이는 여전히 뭔가를 찾고 있다. 미심쩍어 차 안을 들여다보니 열쇠는 그곳에 얌전히 꽂혀 있는 게 아닌가. 문은 잠겼고 날은 사방이 어둠으로 덮혔고, 참으로 난감하였다. 서툰 영어로 보험사를 불러 어찌어찌 문제를 해결하고는 이번엔 꽤 값비싼 추억을 샀다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건망증도 내력인가? 아들도 두 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점퍼를 벗어놓고 공놀이를 하다가 운동장에 버려두고 온 것은 다반사이고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사 준 시계는 석 달을 못 버티고 남의 손에 넘어갔다. 나도 만만찮은데 가족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챙겨야 할 식구가 많아지니 내겐 오히려 뒤늦게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건망증은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성격이 급한 이들은 특급고객이기도 하다. 순간에 몰입하다보면 다른 것들은 곁가지가 된다.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는데 주차해 놓은 차를 찾지 못하여 몇 바퀴를 빙빙 돈 적은 없는가. 주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옷을 사는 것이 목적이기에 기억해야 할 사소한 것들은 가볍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주차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는 중이었을 게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빈틈이 없는 사람들은 벽처럼 답답하다. 혼자여도 완벽한데 남을 위해 내어줄 자리가 있겠는가. 깜빡깜빡 잘 잊어먹고 어딘가 허술해 보이지만 그이 곁에는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꿰찰 자리가 차고 넘친다. 모처럼 부부동반 식사자리이다. 상대가 자리를 뜰 낌새가 보이자 그이는 지갑만 챙긴 채 서둘러 일어선다. 난 또 그이의 담배와 핸드폰을 내 것인 양 가방 속에 밀어 넣고 유유히 그 집을 빠져나온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