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정체성, 선비정신

2016-09-06     이완순: 소설가 / 칼럼니스트

민족의 운명은 정체성의 유무로 판가름이 난다. 정체성을 상실한 민족의 소멸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은 선비정신으로 관료의 부패를 막았다.

민중에게 忠孝(충효)를 불어넣어 수많은 외침에도 당당히 맞서 극복했으며 동방예의지국이 되어 세계가 부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선비다운 선비가 잘 보이질 않는다. 인의(仁義)와 인의를 바탕으로 한 예(禮)를 중시하고, 어떠한 질곡에도 절대로 굽히지 않는 대쪽 같은 지조를 지닌 선비를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세상이기에 준법의식이 사라진지 오래이고, 악귀 같은 탐관오리들이 들끓어 올곧은 선비정신을 지니고서는 안락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삼강오륜으로 기초를 다져 사(邪)를 버리고 부당한 권력의 겁박에 휘둘리지 않는 당당함을 포기한 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에 주눅 들어서 대부분 긍정주의에 의지해 그렁저렁 살고 있다. 삼강오륜 따위는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민주사회에 삼강오륜을 들이미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선비정신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고 그 기반은 삼강오륜이 놓았다. 삼강오륜의 도덕성은 인정하면서도 세계 11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유교규범을 강조하는 것은 중화사대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고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다.

韓문화는 세계문화의 시원이고 한자는 원래 우리 한민족의 문자이다. 중국이 자기 조상이라고 하는 인문시조(人文始祖) 태호복희씨, 농경과 의학의 시조 염제신농씨도 우리 배달국 출신이다.

동이족의 이(夷)자를 ‘오랑캐 이’로 보는 것은 배달, 조선에 지배를 받아온 중국의 트라우마이다. 夷는 大와 弓의 합자로 큰 활을 가진 민족을 의미하며, 동이족은 막강한 군사력을 지녀 동북아를 지배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에 활은 지금으로 치면 핵을 탑재한 ICBM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삼강오륜을 준수하는 것은 문화적 사대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꼭 지켜야할 윤리이며 한민족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다. 君(임금 군)을 나라로, 臣(신하 신)을 백성으로 해석하면 이기주의를 넘어 개체주의에 빠진 더러운 서양문화 범람을 일시에 몰아낼 수 있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윤리이다.

삼강 중 君爲臣綱(군위신강)은 백성이 지켜야 할 도리인 忠(충)이요, 父爲子綱(부위자강)은 자식의 도리인 孝(효)이고, 夫爲婦綱(부위부강)은 아내가 지켜야할 도리인 절개와 정조이다. 남존여비를 강조하는 반인권적인 말이라고 투덜댈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륜에 남자를 강제하는 의무가 들어있다.

夫婦有別(부부유별)이 바로 그것이다. 부부에게 각각 제 몫의 의무가 있다는 뜻으로 남편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가정을 지켜야하는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삼강이 인륜을 강조했다면 오륜은 의무를 규정했다.

아비와 아들은 친밀해야하고(父子有親, 부자유친), 친구는 서로 믿어야한다(朋友有信, 붕우유신). 나라와 백성은 정의로워야 하고(君臣有義, 군신유의), 권력과 재물로 서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 반드시 어른을 공경해야한다(長幼有序, 장유유서).

   눈을 씻고 봐도 선비다운 선비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은 가슴 속에 충효와 예를 지니고 사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축제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행사가 많은 대한민국에서 어딜 가나 내빈소개 시 관료 우선이고 기득권이 판친다. 선비의 표상인 소위 문인들의 모임에서도 원로는 안중에 없다. 심지어 어떤 문인단체에서는 회장이 무슨 감투라도 되는 듯 젊은 사람이 제멋대로 설치고 반말을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다. 하긴 충효를 무시하고 친일을 부추긴 친일작가들이 버젓이 활동했던 문인단체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마는 그래도 선비정신을 훼손하는 문인들의 행태가 늘 거북하고 너무 창피하다.

  공황에 가까운 경제난 속에서 썩은 권력에 손가락질하는 것만으로는 민족을 되살릴 수 없다. 국민이 모두 탐욕을 버리고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길밖에는 특별한 묘수가 없다. 젊은이의 가슴 속에 孝만 산다면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 를 극복할 수 있고, 국민이 하나 되어 忠을 바탕으로 한 삶을 살고 禮를 실천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전쟁의 승패는 무력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애국심의 크기로 결정된다. 과거 고구려 때 거대한 수나라와 당나라 침략을 물리친 것을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忠, 孝, 禮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