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운 태양

2017-04-08     文 熙 鳳(시인·평론가)

[세종tv=문희봉)오늘에 와서 생각해 본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게 요동치던 세월도 있었는데, 고교 시절 태권도장에서 이단옆차기, 올려차기를 하는 폼이 너무나 유연하고 멋져 보였었는데. 매주 한 번씩 즐기던 배구경기에서 스파이크도 꽤 잘 한다 소리를 들었었는데. 지금은 턱걸이 한두 번은 그만 두고 철봉에 매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올곧게 벋은 소나무보다 휘어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고 값이 나가는 법이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 휘청 굽이친 물줄기가 더 아름답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운치가 있고 아름답다.
  내가 자동차를 굴리게 된 것은 자그만치 70년을 훌쩍 넘겼다. 그간 만고풍상을 다 겪었다. 망망대해에 뜬 일엽편주일 때도 있었고, 고봉준령의 바위 틈에 가까스로 뿌리를 내린 어린 소나무 신세일 때도 있었다. 협곡의 좁은 길을 운전할 때가 있었고, 광대처럼 외줄 타는 솜씨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수로에 빠져 허우적거린 때도 있었고, 마라톤을 해야 할 때 단거리 선수인 양 오버할 때도 있었다.
  언제까지나 맑은 날만 계속될 수 없고, 곧은 길만 이어질 수는 없다. 때로는 궂은 날도 있어야 가뭄이 계속되지 않아서 사막화도 막을 수 있다. 굽이굽이 힘든 고갯길을 넘어보아야 삶의 의미도 조금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낙엽’이라는 단어에는 감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낙엽 타는 내음에 향수가 느껴지고 낙엽 밟는 소리에 가슴 뭉클한 낭만이 전해 온다. 낙엽에는 이처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니 모두가 그립게 느껴진다.
  기계를 오래 사용하다 보니 요즘은 카센타 출입이 잦아졌다. 하숙집 밥 삼 년 먹으면 뼛속이 다 빈다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게는 조로현상이 너무 일찍 찾아 온 것 같다. 좌우쪽 어깨 관절이 부실하고 몸속에 결석이 너무 많아 괴롭힘을 당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눈물샘은 언제 다 퍼냈는지 바싹 말라 있어 눈물을 요할 때 사람 노릇 한 번 못했다.
  누가 봄을 젊은이들만의 소유물이라 했던가? 젊은이의 봄은 기쁨으로 차 있는 홑겹의 봄이지만 나이 든 사람의 봄은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 지닌 겹겹의 봄이라는 사실은 왜 모르고 있는가?
  비결이 뭐 있겠나. 비바람 불고, 폭설도 내리고 했지만 가끔 해뜰 날이 있었으니 그런 날 바라고 살아온 것이라고 할까나. 바람은 나뭇잎만 흔드는 게 아니다. 내 몸 구석구석에서 나를 떠나겠다 마구 흔들어댄다. 그렇지만 굽이굽이 힘든 고갯길을 넘어 보아야 삶의 의미도 조금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위를 한다.
  이제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웰다잉을 하기 위한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마디마디 기름 때가 낀 못 박힌 거친 손이지만 큰 과일을 따려면 많은 자잘한 열매들을 솎아낼 줄 아는 지혜도 갖추어야 한다. 살아감에는 긍정의 힘이 좋다.
  이젠 내 몸의 원기는 거의 고갈 되었다는 생각이다. 계절로 따지면 야윈 가슴을 더 아리게 하는 늦가을 오후쯤일까. 천 원 짜리 한 장 없어도 한 겨울을 보내던 그런 적막한 세월도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일인들 견뎌내지 못하랴.
  오늘도 행복한 하루을 만들어야 한다. 고통 없는 삶은 비극이다. 병은 인생을 지혜로 이끄는 선지자라 했다.     누워 있는 곳이 병원인 듯 집인 듯, 여보를 부르다가 간호사를 부르다가 그렇게 내 아픔은 깊어만 갈 게다. 해 묵은 나프탈렌 냄새 풍기지 말고, 말이 천사의 집이고 실버타운이지 애지중지 키워 온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고 이 세상에서 쫓겨나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실버타운이다. 그런 곳에 가기 전에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일이다.
  지금까지 버텨준 내 애마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일십백천만의 정신으로 살 것이다. 간장종지처럼 볼이 패이고, 어둡고 안개 자욱한 길을 걸으며, 소리 없이 기도해야 하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만 오천여 개의 낡은 부품들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주인을 지켜준 나의 명마에게 감사할 뿐이다.
  태양은 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답다.

* 일 : 하루 한 가지 이상 선행을 하고, 십 : 하루 열 가지 이상 칭찬을 하고, 백 : 하루 백 자 이상 쓰고, 천 : 하루 천 자 이상 읽고, 만 : 하루 만 보 이상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