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2012-06-19     윤기한 사장

 

정말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그렇다. 아무나 할 수 있다. 법으로 정해져 있다. 선거방식으로 뽑히면 되는 게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인기투표에서 일등을 하면 대통령 자리를 얻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머리를 쳐들고 덤벼든다. 한번 해 보겠다고 나선다.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서부터 안 될 게 없다. 다리병신도 괜찮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은 미국의 루즈벨트는 자그마치 3선까지 했다. 얼굴이 험상해도 좋다. 외국의 제3세계 국가 몇몇 사람이 그렇다. 머리털이 소갈머리 없듯 해도 대통령 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폴란드의 어느 대통령이 그랬다.

학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버드대학을 나오지 않은 카터도 대통령을 했다. 링컨대통령은 고등교육과는 전혀 무관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 실업계 고교만 나와도 괜찮다. 공부는커녕 어망이나 만지다가 행운을 잡은 이가 있기에 말이다. 미국의 전설적 영웅대통령 케네디도 유명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돈이라는 것도 크게 소용되지 않는다. 출마한다는 선전만 하면 뒷구멍으로 천문학적 숫자의 돈이 똥자루처럼 굴러들어온다. 멸치잡이 부자의 아들이라면 대통령하기 쉬울 수도 있었나 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선만 되면 돈이야 깡그리 뭉쳐지는 것이니 더더욱 걱정할 게 아니다.

사상이라는 것도 따질 게 아니다. 레드 페이스(Red face)니 노스 페이스(North face)니하는  의류 트레이드 마크처럼 그냥 내놓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다. 종북이라든가 친공이라든가 해도 빨갛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우겨댄다. 되레 색깔마저 근사하다고 홀딱 반해버리는 국민이 많으니 그럴만하다.

그건 그렇다 각설하고 요즈음 돌아가는 대통령 지향도는 정말 가관이다. 독도법(讀圖法)지식이 부족해서인지 마냥 헷갈린다. 여당에서는 현재 네 사람이 대통령 하고 싶다고 한다. 도토리 키 재기정도의 쬐그마한 인기를 디딤돌로 푸른 기와집 담을 넘보겠다고 떠들어 댄다. 야당에서도 한 자리 수의 미물 같은 인기를 업고 북악산 앞뜰의 주인이 되고 싶어 법석을 떤다.

새누리당에서는 대통령실장을 하면서 터득한 비선의 재주를 믿고 덤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재산을 가지고 당대표를 지내고 전임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해서 오히려 국민을 바보로 만들었던 인물도 나섰다. 현임대통령의 선거캠프좌장을 해서 개선장군의 기개를 지닌 사람과 열혈청년운동의 기백을 간직하고 수도권민심을 독식한 듯 자만하는 사람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민주통합당에서도 역시 대통령실장을 지낸 사람이 경상도 뚝심을 바탕으로 선전포고를 끝냈으며 초선국회의원의 용감한 투사도 서둘러 선거전 대열 참여를 호언한 바 있다. 영국의 명문대출신으로 일찌감치 당대표를 역임하고도 철새라는 악명을 듣는 신사와 민초의 수장으로부터 입신해서 장관직을 경험한 호남형용모의 영남사람도 대권도전에 합류하고 있다.

이럴진대 국민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의 선택 문제를 고민한다. 이른바 ‘좌빨이’라는 쫀비를 찍자니 종국에 가서 아사(餓死)하는 운명을 자초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수쟁이’ 꼰대를 뽑아주면 맨눈으로 봐도 무골충(無骨蟲)인 자폐아 대통령이 맨날 빨간 보자기에 싸여 설사나 해 댈 테니 그게 더 큰 걱정거리가 된다고 여긴다.

게다가 대통령에 목마른 위인 모두가 헛구호를 제창하고 있어서 정말 난처하다. 그들의 절규는 ‘프라이머리’ 어쩌고에 집중되어 있다. 언제부터 영어사용에 그토록 충실했는지 염치도 없는 수작을 펴고 있어 눈살이 찌프러진다. 물론 그건 ‘국민경선’이란 말이다. 또 ‘모바일’ 뭐니 하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전자방식투표를 일컫는 말인가 보다. 웃긴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출마 욕망자들이 내거는 ‘경선 룰’고집은 역사적 해프닝을 만들자고 작정한 인상을 준다. 내둥 해오던 짓도 멍석 깔고 보니 응석 부리는 것도 아니고 떼쓰는 것도 아닌 몸부림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진짜진짜 “꼼수야 같이 놀자”가 아닌가. 몽니를 떨어도 유분수이지 적과의 동침만이 능사인가.

누구를 위한 규칙개정이며 누구 좋으라고 국민경선인가. 어느 장단에 춤추다가 제 허벅지 살 베이는 것 모르고 말자는 것인가. 죽 쒀서 개 주자는 것인가. 총선에서 베풀어준 국민의 은혜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상대의 전략전술에 놀아나고 얼빠져서 그러는가. 다수 국민의 우려가 태산 같은 현실을 제발 직시하기 바란다.

군사혁명이니 유신헌법이니 하는 망령을 다시 초혼해서 흔들기 작업을 시작하는 듯한 작금의 세태는 눈꼴사납고 얄밉기까지 하다. 그런 말이 나올라치면 부역자의 사위라는 입장은 얼마나 떳떳한 것인가. 또한 누구는 과거에 공산당원 아니었던가. 대통령을 한 몇 사람이 이제는 고인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전향한 덕을 봤을 뿐 아닌가.

번드르르한 비단 치마 밑에 가려진 고쟁이에 때가 더덕더덕 묻어 있는 상황은 어쩔 것인가. 남을 욕하기에 앞서 제 몸 추스르기나 제대로 하는 아량과 조심이 필요한 게 법도 있는 집안의 가풍이란다. 이제 ‘20-50’의 위대한 레블을 달게 된 우리의 행복한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번듯한 양가의 덕목을 지키는 슬기를 지녀야 마땅한 것이다.

연분홍 치마 바람은 달콤한 낭만을 선사하지만 주책없는 파락호의 슬픈 종말을 유도한다. 붉은 악마는 코리아의 승리를 기약하며 세계 어디에서나 용감무쌍하다. 최고의 존경과 최대의 환영을 제시하는 붉은 카핏은 누구나 밟고 싶어 한다. 그러나 ‘빨갱이’는 몸서리쳐지는 악귀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의 동족살상 이미지가 여전히 거기에서 출몰하기 때문이다.

잘 뽑자. 올바르게 선택하자. 국리민복을 제대로 이행할 인물을 찾자.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유행가마저 짜증스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해서 너나없이 중구난방으로 대통령되겠다고 건방 떨지 않으면 좋겠다. 뇌화부동하는 국민의 어리석은 판단을 사로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붉은 무리를 결코 용납하지 말아야한다. 살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