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다수의견 인정하되 소수의견 무시 말살돼선 안된다

2017-06-14     김광무 기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사소한 의견이라도 하나로 통합하면 5,000만의 국민적인 합의가 단숨에 이루어 질수도 있고, 백인백색의 외모처럼 달라지다 보면 5,000만이 갈라질 수 있다.

섣불리 하나로의 통합을 꾀하다 보면 전체주의나 획일주의에 빠지게 되고, 갈라지기만 하다 보면 되는 일 없는 국론 분열을 면치 못하고 만다.

우리는 소수 의견과 다중의 바람의 존재 의의와 전개 방향에서도 그런 양 극단을 생각할 수 있다. 몇 천 명 중에 몇 명의 소수가 어떤 주장을 선도하고, 혹은 몇 천 명 모두가 거기에 동조 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그런 주장은 아직 소수 의견에 불과한 경우를 많이 본다.

소수 의견이라고 해서 무시되거나 말살되어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반대로 소수의 그와 같은 극단론에 다중이 무시 또는 말살하려 하는 등 무비관적이며 획일적으로 휩쓸려서도 안 된다.

그보다 앞서서 해야 할 일이 소수 의견에 대한 다수의 더 명 확, 명료한 조명이다. 여당정치인 말이 옳은 말인지, 야당정치인 말이 옳은 것인지는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논리적 정당성은 무엇인가, 아니라면 그런 부당한 논리가 나오게 되는 근거는 무엇인가가 선행적으로 규명되어야만 억압과 맹종, 무시와 말살, 소통과 자유라는 상반된 암흑 공간이 아니라, 지성적인 밝은 세상에서 조명되고 검토됨으로써 생산적인 국가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단련된 논리적 과정을 통해서 소수 의견의 정당성은 더 많은 다수의 합의로 발전되어야 하며, 그 부당성은 합리적으로 도태되어 가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종종 극단적인 소수 의견이 그런 여과 과정 없이 다수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반대로 정당한 소수 의견이 무시되고 말살되면서 또 다른 많은 문제로 시달려 온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사분규, 학생시위, 가진 자들의 이른바 '갑 질' 행위, 방화나 살인, 파괴와 같은 과격 행위도 처음부터 근로자나, 학생, 가진 자들의 다수 의견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과격한 소수의 의견이나 행동이 바람을 일으키며 다수가 차차 더 격한 바람에 휩쓸리고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런 결과는 잃은 것은 많고, 얻는 것은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는 것을 국민들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많이 접해 왔다. 아울러 평소의 정당한 소수의견이 무시, 말살됨으로써 과격한 소수가 생겨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던져 주기도 했다.

정치풍토에서도 정당한 소수 의견이 무시되는 전체적 획일화와 함께 극단적인 소수의 바람이 무조건 다중을 휩쓸고 가는 폭풍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일어난 노사분규에서도 극단적인 소수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조절되고 자제되거나, 정당한 소수 의견이 절차에 맞게 수용되면 될수록 타결의 길이 빨랐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분규가 격화되고 장기화 됐다.

민주주의는 획일화도 아니고 바람도 아닌, 더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수는 소수를 존중하고 소수는 다수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인간이 추구 하는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김광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