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젠 걱정 마

2017-10-23     민효선 수필가

선을 행하는 일은 어렵고 악을 행하는 일은 쉽다.

동서양 구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리는 올바르고 착한마음 가짐은 누구나 마음속에 지녀야할 덕목이다. 영국 격언가운데 ‘악을 선으로 갚는 자는 항상 승리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마음을 잘 가지면 죽어도 옳은 귀신이 된다‘는 말이 있다.

선행을 많이 쌓은 집안은 그 자손들에게 필히 경사로운 일이 넘쳐난다는 말인 것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도 한다. 이처럼 착한 마음을 갖고 좋은 일을 많이 하자고 마음을 다짐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렵다.

올 추석은 참 길었다. 연휴를 즐길 방법이 뭐 없을까? 머리를 짜낸 것이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선은 제주도 여행을 알아보던 중,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번 추석에는 제주도를 갈 수 없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일찍이 몇 개월 전쯤에 예약을 했어야만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제주도를 갈 수 있었다. 제주도는 배 편이든 비행기 편이든 구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족 5명이 움직이려니 쉽지 않았다.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여 젊은 아들에게 알아보라 하였지만 이번 추석엔 포기하자는 아들의 말을 듣고 헛웃음과 함께 바로 수궁하고 말았다. 그래도 난 이번 추석엔 우리가족 5명이 꼭 여행을 가고 싶은 맘이 들어 제주도를 못가면 ‘해외로 가지’하며 해외 쪽으로도 알아보았다.

그러나 평상시 가격에서 2배도 더 넘는 초 절정 성수기임을 알고 또 한 번의 헛웃음과 함께 여행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올 해가 아니면 우리가족 5명은 함께 여행 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두 녀석이 공부 중에 있으니 조금의 여유가 있어 함께 할 수 있을 거고, 문제는 시어머님이다. 어머님이 치매진단을 받으신지 일 년이 다 돼 간다. 알츠하이머 치매진단을 받았지만 예전과 크게 다름없는 어머니를 보며 내심 안심하며 지냈다,

그런데 20여 년 다닌 복지관에서 어머님을 그만 나오라하셨단다. 전화를 걸어 담당선생님과 통화 했다. 다른 할머니들이 시어머님을 싫어하고 그만 나오게 하라고 압력을 넣는단다. 하니 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님께 그만 나오시라고 했단다. 아마도 치매로 인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

83세 시어머님의 낙은 오로지 복지관을 가는 것이다. 탁구며 댄스며 동적인 활동을 즐기시며 하루하루를 보내시기 때문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신체 건강함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며 ‘100세까지 살겠노라’ 하시던 어머님이셨다. 그런 어머님이 소일 없이 집에만 계시게 될 것이니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맘이 편치 않았다.

올 봄에 국민건강공단에 치매 등급신청을 하였지만 너무도 멀쩡해 보이는 어머님은 등급 받기 어렵겠다는 직원의 말대로 등급이 나오질 않았다. 최하등급이라도 받으면 요즘 말로 노치원이라 하는 재가노인복지 시설을 이용하면 좋을 것인데,

그마저도 나오질 않아 집에만 계시는 어머님을 볼 때면 왠지 불안한 맘이 생기곤 했다. 집에 혼자 계시면 치매가 더 빨리 진행된다 하니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주간보호 센타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런 걱정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친구는 주간보호 센타에 먼저 다니며 치매등급을 받으라고 권해주었다.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급을 받는 절차들이 진행되며 바로 5등급을 받게 되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어머님을 재가복지센타에 보내드리니 조금은 맘이 편해졌다.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니 식사로 인한 부담이 줄어든 데다 어린아이들 유치원처럼 그리기며, 노래와 율동이며, 뇌 기능에 자극을 주는 활동들로 하루를 보내신다 하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바로 적응하는 어머님을 보며 우리나라 복지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갖게 되었다.

이런 복지가 없다면 누군가 책임져야만 하는 이 현실에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우리나라 고부간에 갈등은 말하지 않겠다. 대한민국 고부간이라면 갈등이 없으면 이상한 일. 나에게도 시어머님은 사랑하기엔 너무도 먼 당신이었다.

당신 자신 밖에 모르시는 어른, 그런 어른을 사랑하기에는 참 힘이 들었다. 남편이며, 손주들 생일조차도 기억 못하시는 어머니. 그저 당신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아 몸 돌보기를 1순위로 알고 사시던 어른. 그런 어머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 4년 전부터 조금의 심경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정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장녀인 나는 하루 12시간을 꼬박 간병에 매달려야만 했다. 엄마와 석 달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친정 엄마의 식습관을 간섭하며 우리 시어머님처럼 건강관리하지 못한 친정엄마를 탓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결혼해서 한 번, 딱 한 번 시어머님을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 전부였다. 그 많 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셨던 어머님이, 그래서 이기적으로만 느껴졌던 어머님의 자기 관리가 ‘잘 하신 거로구나’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게 되었다. 외며느리인 내가 감당해야하는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속 깊은 배려에 감사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어머님이 치매란다. 신체 건강한 치매.

8월 말쯤 이던가? 병원에 치매 진료 소견서를 받으러 갔다.
주간보호 센타에 계신 어머님을 직원이 모시고 병원으로 오기로 했다.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주차장으로 갔다.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시는 어머님께서 날 보시더니 웃으며 다가오신다. 그저 반가움에 웃음 짓는 얼굴이다. “아이고! 니가 여기 왠일이냐?” 물으신다.
“어머니, 병원은 나랑 가는 거야” “복지센타 직원은 돌아가야 해” 어머님을 향해 윳음 짓는 난 그저 작아진 어머님을 향해 덥석 손을 잡는다.

이제는 며느리인 내가 돌보아드려야 할 어머님이다. 그동안 며느리에게 짐 지우지 않으시려고 방을 얻어 혼자 사시며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해오셨던 어머니. 그 당당하시던 어머니가 나에게 모든 걸 맡기신 것이다.

올 추석 긴 연휴가 끝났다.
자신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작아져만 가는 어머니.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다. 주름진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내 동공에서 반짝거렸다. 순간 올바르고 착한마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엄마, 이젠 걱정 마. 내가 엄마 건강 지켜줄 게. 그리고 내년 추석 연휴에는 우리 가족 함께 여행 가. 그러니 정신 줄 꽉 잡고 놓지 마“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