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다

2017-11-19     文 熙 鳳(시인·평론가)

오늘도 보문산에 오른다. 내리는 길 고정된 좌석에 사주관상을 보는 노인이 앉아 있다. 그 앞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다. 얘기를 들으면서 젊은이들은 파안대소다. 앞길이 훤히 뚫려 있다는 얘길 들은 모양이다. 내가 이 노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벌써 수십 년째라 소일거리로 나와 자연도 감상하고 사람구경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인의 운명을 미리 알고 알려주는 신통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다. 볼 때마다 그의 앞에는 한두 사람이 앉아 있으니 말이다.

고된 생활을 운명에 맡겨버리는 안일하고도 체념적인 그릇된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갈고 파고 헤쳐 나갈 생각은 아니한다. 운수대통할 일이 어디 없는지 살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쓰는 관용구는 대개 이렇다.

'고생도 팔자'라든가,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든가, '그것도 운명이다.'라는 말들이다. 주어진 운명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무기력하고 나약하면서 절망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하긴 그렇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미완성의 상태로 태어났다. 그러하기에 자기의 전인적 생활을 위해 최대 노력하면서 행복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앞길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집트 민족에게 시달리며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같은 위대한 민족지도자에 의해 가나안 복지로 나와 새 운명을 개척했다.

우리도 광복이 맞기까지 수많은 순국열사와 애국지사들의 피로 자유와 정의의 승리를 쟁취했다. 나라 잃은 설움을 몸소 체험했기에 나라를 되찾고자 밤낮이 없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오직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뭉쳐 이루어낸 결과다. 유관순 열사가 그랬고, 김구 선생이 그랬고, 안중근 의사가 그랬고, 이준 열사가 그랬다. 그분들이 고귀하게 흘린 피를 더럽히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황폐한 사막지대에서 가난과 배고픔에 허덕이는 덴마크를 오늘의 세계 복지국가로 이끈 데는 민족지도자 그룬트 비히의 고난의 운명을 개척하는 헤아릴 수 없는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라인강의 기적도 독일 국민이 근면과 단결로 운명을 개척한 노력의 대가이다. 감나무 밑에서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바보의 얼굴에는 어떤 류의 행복이 장전되어 있을까?

고난을 박차고 일어서는 용기와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적극적인 신념이 앞서야 산 너머에 있다는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구두닦이 점원 등의 가난한 운명을 헤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된 링컨은 우리 삶의 표본이다. 어떻게 자기 환경의 운명을 개척하느냐에 따라 성공이 결정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인도를 구한 간디, 아프리카 밀림에서 흑인의 운명을 개척해준 슈바이처 박사, 종교의 새 운명을 낳은 마틴 루터, 풍전등화의 나라 운명을 건진 충무공 이순신 등 운명을 개척한 빛의 인물들은 수 없이 많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무나 안이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내가 욕을 먹겠지. 취업률이 아주 저조하다는, 청년백수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얘기도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워 못한다는 3D 업종에 속하는 일은 하기가 싫다. 그 자리를 누가 메꾸는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메꾼다. 대학까지 나왔는데 굶으면 굶었지 손톱 속에 기름기가 끼고 위험천만한 일은 하기가 싫은 것이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고 있는 일을 우리의 청년들이 맡아준다면 취업률 100%도 가능하다.

야비한 황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앞길을 신념으로 개척해 가며, 살아 움직이는 의지의 사람들이 되기에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는 분명 오고야 말 것이다.

운명은 개척하라고 있는 것이지 바라만 보고 있으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