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2017-12-10     문희봉(시인·평론가)

수컷 가시고기는 암컷이 산란해 놓으면 그 알을 지키느라 알 근처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일생을 마친다. 혹시라도 다른 물고기들이 알을 해칠까 봐서다. 알이 부화해 움직이기 시작할 때가 되면 그 가시고기는 탈진 상태가 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새끼들이 그 가시고기의 살을 파 먹으며 커가기 시작한다. 결국은 자신의 몸을 모두 내주고 가시만 남게 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가시고기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정신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리고선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어버이는 가시고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자신의 노후를 생각해야 하는데, 어버이는 갖고 있는 것 모두를 주고도 더 못 주어 안달이다.

동네에 혼자 사는 노인을 운동길에서 만났다. 올봄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했다. 올해 노인의 나이 77세다. 이제 신중년 말기쯤의 나이다.

서울에 두 아들이 살고 있다. 인사차 물었다. 왜 아들집에 안 가고 혼자 고생하느냐고. 그 노인 웃으며 하는 말이 요즘 세상 늙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단다.

옛날에는 ‘명심보감’ ‘도덕경'에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지금 효도한다는 말 자체가 젊은 사람들에게 ’금기어‘가 된 세상인데 혼자 사는 게 마음 편해 좋단다. 그러면서 나보고도 늙어 보란다. 자식들 집에서 일주일이라도 살 수가 있는지. 씁쓸한 말이다. 자식 집에 한 달 간만 살아보면 늙은 사람 생활 방식하고 젊은 사람들이 사는 게 너무 달라 금방 가지고 갔던 보따리 되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 자식 부부, 좋던 금슬도 늙은이가 끼게 되면 다 깨지게 돼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허공을 쳐다본다. 어설피 국가에서 쥐꼬리만한 노인수당 주는데 자식놈들은 국가에서 노후를 책임져 주는 줄로 착각하고 용돈은 생각도 안 한다.

노인과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 내내 저 노인의 모습이 내 오륙 년 후의 모습 같아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아프지 않고 오래 살려고 저렇게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노후에 자식에게 얹혀사는 삶이라면 오래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벌써 몇 년 됐나 보다. 시민공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며느리가 손잡고 운동을 하기에 뒤떨어져 가는 손녀에게 할머니냐고 아내가 물었다. 그 손녀가 하는 말이 "네, 할머니는 자기 집도 있는데 우리 집에 와서 저런대요?"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프고 쓰렸다.

그 말이 곧 며느리하고 아들의 생각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그때 아내가 하는 말 ‘우리도 더 늙으면 절대 아들집에 얹혀 살 생각 하지 말자.’였다.

부모가 늙으면 다 짐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 자식들이라고 별 수 있을 줄 아는가? 다 똑같은 것이다. 네 집 내 집 가릴 것 없이 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노부모 생계는 나라에서 책임져 주는 줄 안다. 노령연금인가 하는 것 몇 푼 주는 걸 책임지는 걸로 안다. 노인이 하던 말 새겨들어야겠다. ‘국가가 절대 노후 보장은 안 하는 거라.’고 확실히 알려는 주어야겠다.

큰아들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 노인의 씁쓸한 노후도 엊그제 언론을 통해 듣고 읽었다. 든든한 큰아들에게 재산을 생전 상속을 해 준 노인이 있었는데 큰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큰아들 재산은 큰며느리에게 상속되었지만 그 며느리는 시부모는 가난하게는 살지만 작은아들이 모셔야 한다고 한단다. 작은 아들이 있는데 왜 외기러기 며느리가 모셔야 되느냐고 대문을 걸어 잠갔다는 얘기다.

요즘은, 자신은 자신이 지켜야 할 시대가 된 것 같다.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복을 타고 났으면 좋으련만. 부모는 어차피 가시고기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10.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