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중년의 작은 소망

文熙鳳(시인·평론가)

2018-02-18     세종TV

하찮은 작은 것이다. 커다란 그 무엇을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실행할 수 없는 무형의 그 무엇도 아니다. 단지 이 나이에 소꼽놀이 같은 작은 꿈을 꾸는 것은 서로 함께 꿈을 키우며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다독다독 서로의 마음이 엇갈리지 않게 일시적이 아니라 오래도록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을 우리 중년들은 소망한다.


 중년과 신중년, 확실하게 획을 그을 수는 없지만 60~70대를 나는 중년이라 부르고 싶다. 할 일도 많고, 해놓은 것을 정리해야 할 일도 많은 나이다. 엊그제는 지인의 모친상 조문을 하러 갔다. 여섯 명의 고인이 안치되어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분들의 면면을 살펴 보았다. 하던 일은 모두 마무리하고 가셨는지 궁금했다. 최고령은 98세, 그 다음이 88세, 87세, 79세, 75세, 가장 젊은 분이 61세였다.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나이 차이, 그러나 지금 그분들은 모두 동기생이다. 약 40년 차이가 났다. 세상 살면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그리 흔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가신 분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다 마무리 하지 못하고 내일로 미루었다가 미완으로 남겨논 분도 계실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루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발에 종기가 날 것 같아 하루를 25시간으로 살아오신 분도 계실 것이다. 그 많은 하고 싶은 일을 어찌 두고 눈을 감으셨을까를 생각하면 나도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 오는 날이면 낙숫물 소리를 악보 삼아 자신을 살찌우기 위해 글을 읽는 사람, 바람 부는 날이면 흩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는 상대의 작은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며 늘 같이 하고 싶은 사람, 마음이 우울할 땐 언제든지 달려가든 부르든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며 서로가 아파하는 부분들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같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사람과의 관계를 우리 중년들은 소망한다.

   중년의 나이 아직도 젊은 꿈을 꾸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 빛 바랜 추억,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찾아오는 오해, 이룰 수 없는 사랑 등등. 이러한 것들이 뒤섞인 삶을 살면서 지나간 것들을 추억하며 사는 중년, 아직 소망하는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들이다.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진다. 필요 없는 것, 작은 것까지 보지 말라는 조물주의 가르침이다. 귀도 잘 안 들린다. 작은 것은 듣지 말고 필요한 것만 들으라는 뜻이겠다.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을 먹어서 소화불량에 걸리지 말라 가르침을 주는 것이겠다.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럽게 된다. 이는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뜻이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되면 불평하면서 볼멘소리를 한다. 현자(賢者)들은 알아듣는데 우인(愚人)들은 알아듣지 못하니 평생을 배워도 이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인생 2모작을 열심히 갈고 닦았을 그들이었겠다. 음악, 미술, 무용, 문학, 연극, 무용 등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다. 프랑스의 퐁피두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보람 있는 노후를 위해 꼭 해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창했던 다섯 가지를 열심히 연마했겠다.


  사랑은 상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때 조금씩 싹이 튼다는 것을 중년이 되어서야 터득했다. 그런 나는 아직도 소망한다. 한 조각 수정같이 반짝일 수 있는 꿈들을 가진 나에게 더 많은 지혜를 갖게 하고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