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몽니

2013-06-12     세종TV

◯ 조간신문은 새색시를 맞이하는 기분을 만들어준다. 오늘도 빨간 유니폼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젯밤 브라질월드컵 예선전에서 승리하고 기뻐하는 사진이 반가웠다. 어쭙잖기야 하지만 그래도 이겼다는 사실은 엄연하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자식이 ‘말아톤’이라도 한 감격을 누린 어느 딱한 양반의 심정이랄까. 어쨌건 ‘해피’할시고. 

◯ 헌데 식전에 배달된 대한민국 3대 일간지의 막내둥이 동아일보의 1면 헤드라인이 앞서의 행복을 깡그리 망가트렸다. “南의 원칙 vs 北의 몽니 . . . 회담 판 깨졌다”가 그 짓을 했다. 섭 타이틀도 ‘남북회담 사상초유 무산사태’라면서 북이 수석대표의 품격을 트집 잡아 회담을 못 한다는 내용을 서글프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속 터지고말고.

◯ 뭐 못된 건 초장부터 알아본다고 꺼림칙했던 짐작이 제 품을 잰다. 난데없는 평화 제스처가 제대로 연기를 수행할 턱이 없잖겠나 싶더니 끝장내는 몸짓이 정말 아니꼽다. 무슨 ‘조롱’이니 ‘굴욕’이니 하는 단어가 난무하는 자체가 넌덜이가 난다. 얼마나 잘 나고 얼마나 대단해서 저들은 차관급 위인을 내놓고 우리에게는 통일부 장관이 나오라니 그야말로 ‘몽니’가 아닌가. 하기야 꼴뚜기도 제 멋에 살겠지롱.

◯ 당초에 통일부 장관이 서둘러 방송에 나온 게 서툰 짓이었다. 회담하자니까 황송한 마음에 다급해졌던가. 그네들의 상투적 행태를 모를 바도 아닐 텐데 조급증 환자의 롤 플레이를 했으니 이런 망신살이 뻗친 게 아닌가. 모처럼 희한한 감동을 안겨준 ‘신뢰 프로세스’의 기호학에 매혹된 국민은 황당하고도 당혹스러운 산기슭에 쭈구려 앉은 형편이 되었다. 그래, 믿긴 누굴 믿어 원 세상에!  

◯ 그보다 더 메스꺼움이 북받치는 형세가 있다. 아침밥상머리 청순한 심사를 할복자살 직전의 일본 사무라이 악운처럼 쥐어튼 기사이다. 기사작성자는 북을 ‘북한’이라 지칭하고 대한민국은 ‘남측’으로 호칭했다. 동아일보 기자 조승호의 호명방식이다. 그는 ‘북한이 남측 명단. . .’, ‘남측은 북한 대표단 구성’ 등의 표현을 즐겼다. 같은 뜻을 가진 말도 품격이 있고 용도차이가 있다. 그에게는 대한민국이 별 볼일 없는 ‘남측’이라는 껍데기란 말인가.

◯ 이건 그 사람 하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북을 안답시고 떠드는 평론가라는 사람들이나 대학의 북한학과니 무슨 북한연구기관이니 어쩌고 하는 존재들이 허접대며 부르는 대한민국은 내내 ‘남측’이라는 어휘로 둔갑하기 일쑤이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놀고 제 친구들이 오가는 곳이 기껏 ‘남측’으로 쫄아든 게 아닌가. 좌빨 끼가 내놓는 ‘쫄면’이란 말인가. 아무리 엑조틱한 게 좋다고 해도 탈북행렬이 나타나는 북을 동경하는 낭만은 허상추적이 아닐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