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속 빈 강정이 아닌가

2018-06-13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대학원장, 시인, 평론

그렇게 떠들던 6·12 미북정상회담이 어젯밤에 끝났다. 팽팽 부풀었던 기대가 바람 빠진 풍선이 돼버렸다. 애당초 서툰 짓거리로 여겼던 예상이 들어맞았다. 뭐 하나 시원한 말을 들을 만한 게 없다. 한 나라의 정상은 분명 그 나라의 우두머리이다. 우두머리는 곧 두령이다. 국민을 거느리고 나라 살림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최고의 지도력이 필요하고 최선의 외교력이 구비되어야 하고 최대의 협상력도 요구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가.

이번 미북정상회담은 세계의 우두머리로 치켜세울 만큼 초강대국의 대통령 트럼프와 그에 비견해서 3대의 세습독재자로 간주할 만큼 흑막(black curtain) 속의 은둔자 김정은이 핵 폐기라는 문제를 협상한 회담이었다. 얼핏 트럼프가 협상의 귀재라고들 재잘댔다. 그러기에 정말 소문 난 잔치가 푸짐할 거라고 지레 짐작들을 해댔다. 헌데 진짜 협상(negotiation)에 뛰어난 게 아니고 부동산업자로서 상거래(deal)에 능숙한 사람이다. 협상은 장사치들의 협잡(fake)은 결코 아니다.

오랫동안 뜸을 드린 이번 회담은 무작정 협상을 우선한 게 아닌 것 같다. 뜸 드린 만큼의 소득이 없으니 말이다. 그 흔해 빠진 공동 코뮈니케도 속 빈 강정이었다. 그동안 미국이 핵심의제로 삼아 엄청나게 강조해온 CVID(완전 검증 가능,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와 비핵화의 구체적인 타임 스케줄도 없다. 헛기침이 나온다. 찹쌀가루를 기름에 튀겨서 꿀을 바르고 깨와 콩가루 송홧가루를 묻혀 만든 한과인 강정은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 과자(rice cake)인데 이게 속이 텅 빈 건 완전한 속임수(fake)이다.

문서에 의한 의견표시인 코뮈니케에 CVID가 없다는 건 우선 김빠진 맥주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어느 회담에서나 크거나 작거나 정부 간의 회담이나 회의의 결과를 요약해서 신문과 방송으로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발표되는 공식성명에서 그게 포함되지 않은 건 ‘하나마나회담’이 아닌가. ‘오늘 주제의 핵심’이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 그 단어는 다 담을 수 없었다니 기가 찬다. 어정거릴 시간은 있고 이건 시간부족으로 빠졌다는 말은 아무리 장사꾼(business man) 출신이라 해도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하는 말 치고는 유치하고 치사하다. 엄청 많은 시간과 인원이 여기저기 헐레벌떡 뛰어 다닌 꼴이 무색하지 않은가.

앞서 “정말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는가”하고 물었던 칼럼에서 걱정했던바가 현실로 등장했다. ‘그 단어는 다 담을 수 없었음’은 한 자리 깔고 뭉개는 짓이지만 너절하고 지루한 기자회견은 무슨 염치로 그리 길게 늘어 잡았는가 되묻고 싶다. 얼토당토않게 ‘시간 없음’을 내비치고도 이말 저말 혓바늘이 설 정도로 장시간 회견을 한 건 무슨 심뽀였나. 게다가 뜬금없이 돈타령 끝에 ‘값비싼 전쟁놀이(war game)는 중단하겠다고 딴소리를 지껄여댔다. 걸핏하면 ’돈·돈·돈타령’에 얼이 빠졌는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날 어른들 말씀 “미국은 못 믿어”가 이제 피부로 와 닿는다. 한미동맹의 힘줄이 느슨해진 건 물론 한참 된 게 사실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세상 밖을 나와 보지 못한 풋내기 쪼다 김정은을 아무리 미북 간에 70년만의 해후(face to face)라 할지라도 그리도 십게, 시원찮게 맞대결을 했다는 게 트럼프로서는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고. 김정은의 승리를 외치는 정치관전평은 참으로 놀랍기도 하거니와 우습기도 하다. 제 자식도 막내감인 김정은한테 한풀 꺾인 세계의 대통령이 안됐다 싶은 심정이다. 김정은을 영웅으로 만드는 방법치고는 너무 졸렬했다. 허술했다. 필경 ‘위대한 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쾌거’를 북한주민은 절규할 게 뻔하다.

기껏 지난 25년간 실패를 거듭한 북한과의 접촉을 자신은 되풀이 하지 않을 것처럼 으스대며 큰 소리했던 트럼프식 허풍이 실증된 회담이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겨우 내놓은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이란 게 ‘새로운 미북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 체제구축 노력, 판문점 선언대로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 그리고 6·25 전사자 유해 수습 및 송환’이다.

실체적인 보증이 어려운 말만 동원 된 듯한 인상을 받는 게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게다. 강정과자의 맛이 주는 ‘고소하고 달콤하고 포근한 미각지수가 미북회담에서는 마이너스 레블(minus level)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플러스(plus)가 무진장 맛있는 강정 지수에 육박하는데 미·북회담은 그렇지 못하니 이거야 말로 ‘속 빈 강정’이 아닌가. 아뿔사, 양 두령의 승패는 뭘 뜻하는가.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