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쓱대는 하차감과 불타는 BMW

2018-08-23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드디어 소송이 벌어졌다. 화재 관련 리콜 대상 BMW차량을 가진 차주들이 화가 났다. 지난 17일과 20일에 120명 차주들이 BMW 코리아와 판매회사인 도이치모터스를 걸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아직 차량화재는 당하지 않았지만 리콜대상 자체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며 위험요소라서 소송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집단소송 참가자는 500명이 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42개 차종에 10만 600여대가 리콜대상이라 증가추세는 확대될 전망이란다.

 

오늘 오후에 시외로 차를 몰고 나갔다. 급한 볼일이 있어서 서둘러가는 길이었다. 원체 많아진 차량이 홍수를 이루어 교통체증에 걸렸다. 서두르는 마음과는 딴판으로 차가 꼼짝하지 않는다. 앞뒤 상황을 알고 싶어 두리번거리던 참에 깜짝 놀랐다. 뒤에 바짝 붙어 서있는 승용차가 다름 아닌 BMW차량이다. 부쩍 늘어난 BMW차량화재 사건을 보아온 터라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고 행여 내 뒤꽁무니에 달라붙듯이 서있는 저 BMW에 불이 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몰려왔다. 재수 없는 푸념이 미웠다.

 

외제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우리나라 사람이다. 그걸 나무랄 참은 아니다. 본시 겉치레에 마음을 쏟는 우리네 DNA가 있으니 어쩔 것인가. 흔히 뭐든 크고 비싼 걸 높이 치는 바람에 헛바람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독일제는 무조건 좋다는 선입관을 가진 게 한국인의 현실이다. BMW나 아우디나 벤츠를 타면 금방 명품가방을 자랑하는 여인네의 사치심 발동처럼 간이 부풀어 오르는 모양이다. 다이아몬드 몇 카랏에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건 그러나 비단 이들 차량만의 경우만이 아니다.

 

이태리제 푸조와 자구아도 명품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자구아 승용차를 타고 골프장에 갔었다니 당연히 자랑스러운 차량임에 틀림없다. 미국산 포드자동차도 한때 한국인의 사치심을 잘 챙겨주었다. 일본제 혼다는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 즐겨 타는 차이다. 영국산 롤스로이스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품이다. 승용차 말고 픽업형이나 화물차도 역시 외국산이 선호되고 있다. GM은 중량감을 앞세운 트럭으로 오래 전부터 한국 땅을 누비고 다녔다. 도요타 일본 소형 화물차는 세계 곳곳에서 자주 눈에 띄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선 별로이다.

 

헌데 내 뒷자리의 BMW는 이상한 짓을 해댄다. 가지나 눈엣 가시인데 교통신호가 바뀌자마자 경적을 울리며 내 우측 레인으로 들어서려고 서둔다. 조여드는 가슴에 이 불한당 같은 BMW가 불을 질러댄다. 진짜 옆에 와서 불타오를까 섬뜩해진다. 냅다 깜박이를 켜고 우측으로 핸들을 꺾었다. 내가 차머리를 먼저 내밀었다. 불붙은 BMW의 환상이 엉뚱한 자동차 레이싱을 저질렀다. 앞지르기를 시도하는 BMW가 너무 밉기도 했다. 교통법규도 우측 추월은 허락하지 않는다. 괘씸하고도 위법적이라 응징해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앞섰는지도 모른다. 외제차량이라는 위세를 보일세라 덤비는 BMW가 못마땅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나. 양반이 할 짓은 아니었다.

그 BMW는 화염에 싸이지 않았다. 괜스런 두려움에 뜻하지 않은 경주는 금방 끝났다. 그 차가 우측 샛길로 돌아나갔다. 이런 해프닝이야 웃어넘길 이야기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외제차량을 타는 사람들은 왠지 튀는 맛에 취해 있는 느낌을 준다. 고급승용차는 우선 승차감이 좋다. 편안하고 넉넉하고 푹신한 기분을 만끽한다. 이런 만족감을 누가 마다하랴. 헌데 그보다 더 좋은 건 으쓱대는 하차감이란다. 명품 외제차에서 내릴 때 주변의 시선을 끌게 되는 매력은 엄청 큰 모양이다. 우쭐대는 쾌감이 대단한 마력(魔力)인 것이다. 자동차 엔진의 마력(馬力)보다 더 크다고 한다. 그러니 으스대기 좋아하는 사람의 애마(愛馬)로 천상배필일 게다.

 

그런데 불난리가 그리도 자주 났는데 BMW차량 소유주들은 왜 항의나 시위를 하지 않았나. 걸핏하면 데모만능을 식은 죽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걸핏하면 1인 시위, 단식투쟁, 삭발항의 등을 해대는 국민특성, 국민권리로 자행하는데 말입니다(군대식으로 말입니다). 오죽하면 촛불시위라는 게 혁명수준의 개념정립이 된 마당인데 말입니다. 바로 그 촛불혁명이 일궈 놓은 게 지금의 대한민국인데 말입니다. 그런 걸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말입니다. 이제 겨우 1인 당 500만원을 내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뿐이란 말입니다. 아 그 이유가 궁금할 건가. 점잖아서 그런 거지 밀입니다 한마디로. BMW 권위를 지키느라 그런 것 아닌가 말입니다 그려. 어깨 한번 으쓱 추켜올리는 그 맛을 알 턱이 있나 말입니다 그려. 독일제 잘나서, 불도 잘나서 말입니다 그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