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오면

2020-05-11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모든 게 싱그럽다. 만화방초가 녹색의 향연을 연출한다. 가장 잔인하다고 읊은 4월을 이겨내고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며 다가온 5월은 ‘감사하는 달’이다. 신록의 계절이면서 장미꽃이 화사하게 움트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날, 가정의날, 부부의날 등이 달력을 꽉 채우고 있을 만큼 정녕 개인의 삶을 재조명하는 달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5월은 아늑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으레 받는 전화가 많다. 젊었을 때 한동안 재직한 고등학교의 졸업생 한 사람이 해마다 거르지 않고 전화를 해온다. 그는 이른바 ‘보강시간’에 잠시 만난 학생이다. 지금은 대학의 교수로 퇴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단 한 번 만난 영어 선생을 흠모한 나머지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오매불망의 대상이라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온다. 얼마나 순수하고 정성어린 기억인가. 내가 되레 고맙기 이를데없다. 이병규 교수, 그의 표현대로 내 자신이 참다운 스승이었는가 하는 자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작년 여름 내 저서의 출판에 즈음해서 마련해준 ‘북포럼(Book Forum)'은 잊을 수 없는 행사였다. 시종일관 모든 과정을 수습하며 노고를 아끼지 않은 제자교수들의 애정에 감루지념의 감사를 보내고 싶다. 고희의 연륜을 한참 지난 박사교수들이 미수를 맞이하는 대학원 논문지도교수의 노욕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이 경사는 자랑스럽고도 고맙기 한이 없는 호사였다.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김용재 박사의 제안으로 세종TV의 논설실장 이정희 박사가 주도한 포럼은 그래서 만강의 치사를 받을 ’찬란한 성취(Gorgeous Performance)'였다.

이런 유쾌하고도 자랑스러운 사례만이 아니고 900여 쌍의 결혼식 주례 행사도 5월의 푸른 하늘처럼 찬연한 기억의 나래를 펼쳐준다. 그 많은 신혼부부의 생산은 그러나 못내 그리운 추억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가정과 생활이 지향하고 경륜하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 하기 때문이다. 결혼식 사진에 클로즈업된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기에 더욱 안쓰럽다. 행여 그런 사진이나마 어딘가에 걸려 있을런지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서는 오래전에 깡그리 잊혀지고 빛바랜 사진첩에 지저분하게 긁혀 있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5월의 싱싱한 호흡, 말쑥한 반소매 티셔츠, 비스듬히 멋부리는 운동모자 캡이 코로나19로 ‘방콕’신세가 되어 있다. 온 세상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서울 이태원 나이트클럽의 출렁대는 춤판에서 흔들어댄 만큼 국민을 혼비백산으로 몰아가고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청춘의 혈액분출이 마술의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마저 5월의 죄악이런가. 모처럼 부풀은 기대감으로 충만했던 각급학교의 등교 날짜마저 연기시키고 있다. 한갓 제 욕심에 날뛴 얼간이 때문에 타의에 따른 무질서 생활의 연속이 아연실색할 참이다. 아뿔사!

5월은 그러나 맛갈나는 달인 것은 분명하다. 건장한 젊은이들의 향연이 억누르는 조건을 무릅쓰고 용솟음치는 광경은 바로 인간의 생명을 찬양하는 것이며 생활의 윤택을 구가하려는 욕망의 표출이기에 검푸른 들판과 화창한 장미의 화원이 어울려 5월을 마냥 찬양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머리를 드리밀며 다가오는 5월은 계절의 여왕 장미꽃을 앞세우고 자랑스럽게 활보한다. 그래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입하(立夏)와 만물이 생장하며 충만된다는 소만(小滿)이 어깨를 으쓱대듯이 5월은 부디 감사와 은혜가 충만하는 싱그럽고 짓푸른 달이 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