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의 현실
미국은 인종차별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인종차별이 불변의 현상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을 포로처럼 잡아다 미국 남부지역에서 노예로 매매했다. 링컨 대통령에 의해 남북전쟁까지 겪으며 철폐한 노예제도는 자유와 평등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인권의 평등성이 존중되기 시작했다. 위대한 미국의 민주주의가 아름답게 꽃피는 결실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미국의 저력으로 위세를 내세웠다.
그렇게 찬양받은 노예해방으로 미국은 세계인의 부러움을 독차지 하는 영광을 얻었다. 찬란하고도 고매한 자유평등 사회를 구가하며 가장 멋진 나라로 세계만방에 크고도 넓게 알려졌다. 진정 지구상의 이상향으로 우뚝 솟았다. 그러기에 ‘아메리컨 드림’을 찾아 미국이민이 성황을 이루었다. 광활한 영토에 개발의지가 드높았던 미국에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글자 그대로 ‘자유 평등’의 유토피아로 미국은 선망의 대상으로 부각했다. 얼마나 멋지고도 좋은 나라인가.
이른바 ‘흑백의 차별’이 사라진 미국은 만인 평등과 자유 민주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영역을 자랑했다. 이디를 가나 인간적 대우를 곧잘 받는 사회가 되어 모든 사람이 진정 자신의 인격을 존중받고 편안하고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었다. 부질없는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는 유토피아가 되었던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만이 아니고 개인의 의사와 자유를 최대한 보장 받는 세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참으로 부럽기 그지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미국이민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꿈의 나라’ 미국에서 겪는 인종차별 현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1970년대의 미국에서 보게 되는 인종차별현장은 대수롭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우선 학문의 전당 대학에서도 인종차별은 은근히 나타났다. 기숙사 식당에서 보이는 식탁의 현장광경이 그렇다. 배식대에서 식단내용을 똑같이 받고 나와서도 넓은 홀에 여유 있게 배치된 식탁 무리에서 색깔이 다른 집단을 보게 된다. 백인 학생들이 앉은 식탁에는 흑인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상식이다. 누구도 뭐라고 말하지 않지만 흑백의 구분이 확연하게 보인다.
시내의 대중식당에 가는 경우에도 그런 현상은 여전하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면 으레 매니저라는 여직원이 손님을 마중한다. 그러면서 먼저 담배를 피우느냐고 묻는다. 흡연자의 경우 약간은 냉대를 받는다. 화장실 통로 근처의 자리를 지정한다. 손님이 자기 마음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 지정하는 자리로 가야한다. 그럴 때 흑인은 물론 드물지만 구석진 곳으로 인도되기 일쑤이다. 백인이 앉은 자리는 언감생심이다. 때로는 흑인이라서 식당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그나마 유색인종 가운데에서도 황색인 아세아인들은 크게 박대를 받지는 않은 듯 했다. 물론 내가 경험한 인종차별은 없었기에 그런지 몰라도 요즈음 벌어지는 미국 내 아세인 차별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더구나 흑인이 아세아인을 박대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뉴스보도를 보면서 장대 같은 흑인 남성이 왜소한 아세아인을 폭행하는 양상은 어쩌면 희한하기 그지없는 광란 행태가 아닌가 싶다. 흑인들은 백색형광등을 싫어한다. 자기의 흑색피부를 너무나 강렬하게 반사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형광등 색조를 황등색으로 바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니그로(negro)들까지도 아세아인을 차별한다니 어쩌면 신기하다.
여하튼 이번에 나타난 미국 내의 인종차별은 유달리 아세아인 증오(Asian hate)로 변질된 것 같다. 백인으로부터 차별과 학대를 받았던 흑인이 아세아인을 무참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을 보자니 속이 상한다. 이렇게 된 연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필시 코로나19, 즉 COVID19의 발원지가 중국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기에 발생한 얼핏 제3차 인종차별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애당초 흑백의 차별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제는 흑황의 차별이 된 것 같다. 이 괴상망측한 차별이 혹시라도 우리나라에서 동남아 사람들을 하대하거나 멸시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큰일이다. 결코 생각지도 말아야 할 현상이다. 인종차별은 부디 망각의 피안으로 돌려버리는 아량을 갖는다면야 오죽이나 좋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