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 간 친구가 있다.
남편은 미혼 때나 기혼인 지금이나 마음이 자유로운 남자. 자녀들의 사업자금을 대고 결혼생활을 지원하던 부유한 친정조차 차츰 기울어 갔다. 예쁘게 물든 이파리들이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물결치던 친구네 넓은 과수원까지 팔려 나갔다. 그러나 큰오빠의 웨딩사업이 기울자 화수분에는 돌이킬 수 없이 금이 갔다.
쌀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미 그런 상황에 익숙한 친구는 비상식량으로 쓸 누룽지를 준비하거나 감자며 고구마도 구해두곤 한다. 어린 아들은 일찌감치 아르바이트에 눈떴다. 친구도 이런저런 일들을 해왔으나 체력에 부쳐 그만둔 참. 주택가 이 층 친구네 낡은 창고엔 도둑고양이가 드나들었다. 새끼도 몇 차례나 낳았다. 그녀는 그때마다 고양이 산모의 수발을 들고 새끼들을 돌봐주었다.
그런데 먹을 것이 떨어졌으니 고양이에게도 밥을 줄 수 없게 되었다. 청소와 빨래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친구는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십중팔구“빨래를 삶고 있어.”라고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이불이며 옷을 한 아름 삶았다고 했다. 삶은 빨래를 줄에 나란히 널어 햇빛 아래 뽀송뽀송하게 말리면 기분이 상쾌해지곤 하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삶이 말끔히 세탁되고 정돈된 듯이. 고장 난 세탁기 대신 맨손으로 빨래를 치대어 뽀얗게 삶는단다. 집안일에 무심한 남편이 떠올라 큰소리로 신세한탄을 하며 일을 했단다.
어느 날인가 삶은 빨래를 들고 현관문을 나오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고 했다. 무언가 발에 밟혀보니 족발인지 닭 뼈인지 뼈다귀 대여섯 개를 밟은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뼈다귀엔 살점이 통통하게 붙어 있었다. 그녀는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다. 창고에서 새끼를 낳았던 고양이가 물어 와서 문 앞에 두고 간 것임을 알아챘다.
친구는 자존심이 강하다. 친정의 쇠약한 노모께 부탁하면 아니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몰락했다고 하여도 그만한 경제력은 되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당신 딸이 최고여서 장차 대통령 부인을 만들려 했다며 누구에게든 자랑하는 분이다. 더구나 생사를 건 사고를 당한 두 딸 중 겨우 건져낸 외동딸이 아닌가.
그러나 친구는 누구에게도 아쉬운 이야기를 한다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홀로 궁핍과 위기를 감당한다. 나와 닮은 면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사람도 아닌 어미 고양이가 남 몰래 물어다 준 뼈다귀라니.
개나 고양이, 사슴, 까치, 잉어 등 동물을 살려주었더니 은혜를 갚더라는 옛이야기들이 동화 가운데에는 많다. 다만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어미가 어미의 심정을 헤아려 주었던 것일까. 친구는 신기하다고 상기되어 하하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물론 고양이가 대견하고 신기하지만 21세기에 쌀이 떨어지다니, 고양이 어미의 마음처럼 내 마음에 지진이 일었다.
쌀을 싣고 달려갔다.
추운 겨울 아침, 어미 고양이의 마음과 내 마음의 온도가 필경 같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