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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 대모 박영숙 안철수재단 이사장이 17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지난 2월 안철수 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DJ계의 핵심 인맥으로 1987년 평민당 부총재를 지냈고 한국여성계에서는 ‘대모(代母)’로 불린다.
고인은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19살 때 월남한 뒤 광주에 정착했다. 전남여고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교 졸업 후 YWCA연합회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을 거쳐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고인은 1967년 35살 늦은 나이에 1996년 별세한 진보적 민중신학자였던 45살 노총각 안병무 박사와 결혼했고, 안 박사와의 사이에 아들을 두었다. 남편의 구속 때문에 거리에서 구속자 가족 시위를 시작했고,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8년 평민당 전국구 1번으로 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박 이사장은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과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철저한 김대중 사람이었던 고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지난 17대 대선에서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지지하는 등 다소 이외의 정치적 행보를 나타냈다.
고인은 “지난 MBC < 100분토론>을 지켜보면서, 가장 머리 속에서 박혔던 것이 다가오는 12월19일을 부패 없는 세상을 여는 날로 선포한 것이었다. 그 확신은 그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을 펴는 순간 선명해졌다”고 주장해 문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투표 이틀을 앞두고는 야권단일화 명분으로 박형규 백낙청 함세웅 등 재야 원로들이과 함께 정동영 후보를 야권단일 후보로 지지하는 정치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 조용히 있다. 2012년 초부터 올해 3월까지는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아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대학교수에서 대선 예비후보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고인의 정치적 행보는 적극적 진보적 투쟁적이었으나 민주화가 된 이후 특히 김대중 정권이후에는 중도실용적 정치 가치를 유지하며 환경문제와 빈곤여성 문제 등 순수 사회운동에만 전념해 왔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병원(특 1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마석모란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