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주차장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옆에서, 뒤에서 차량들이 따라붙었다. 간혹 경적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엔 여유가 묻어났다. 이 혼잡도 쇼핑의 일부처럼 즐기는 듯 보였다.
◆시민들, 의무휴업에 ‘공감’은 하지만 ‘전통시장 가진 않겠다’
대전지역 최초로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SSM) 의무휴업을 하루 앞둔 26일 밤 10시, 중구 오류동 코스트코 대전점을 찾았다. 주말 사흘 연휴까지 껴서인지 마트 주차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쇼핑 차량들로 빼곡했다.
저마다 구매한 물품들은 카트에서 차로 ‘간단히’ 옮겨졌고, 가족 단위 쇼핑객들은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을 향해 “아이고 언제 나간다니?”하면서도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만난 50대 시민(대덕구 거주)은 “대형마트가 휴업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일요일 쇼핑이 사는 ‘낙’ 중 하난데 그걸 못하게 하면 어쩌냐”는 항변이다. 그는 “희한하게 시장은 잘 안 가게 된다”며 “여기(코스트코) 다니던 사람들은 하루 문 닫는다고 다른 데 가진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0대 여성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친구 2명(중구 거주)과 함께 장을 보고 나온 김 모(29·여) 씨는 “우리 같은 직장여성들은 대부분 쇼핑계획을 세워 마트에 오게 되는데 보통 10만 원 정도 지출한다”며 “내일(27일) 쉰다고 하면 하루 전에 오거나 다음 날 마트에 가면 될 일”이라고 했다. 유성구에 산다는 그녀는 평소엔 이마트 트레이더스 월평점(서구)에 간다.
◆중구 내 마트만 휴업, “하려면 다 해야지 중구만 하면 무슨 효과?”
이보다 앞서 찾은 홈플러스 문화점. 식료품 등을 파는 지하 매장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남편과 두 아이를 대동하고 마트를 방문한 임수정(40·여·중구 거주) 씨는 대형마트 등의 의무휴업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마트 휴업으로) 불편하지만 다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녀는 이어 “대전에서 중구지역만 의무휴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무슨 효과가 있겠나. (휴업을) 하려면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해야 전통시장을 살리든 골목상권을 살리든 할 거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SSM의 사정은 어떨까. 2008년 7월 개장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오류점. 이곳은 27일 휴업에 맞서(?) 토요일에 장을 보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패밀리카드 적립을 5배로 늘렸다. 신선대표행사로 10% 추가할인도 해준다.
이 점포의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매입액)는 8000∼9000원으로 주변 삼성·미르아파트 등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목동에 산다는 이 모(46·여) 씨는 의무휴업에 ‘긍정적’이지만 “여기가 놀면 다른 동네 마트로 갈 것”이라며 “홈플러스에서 가오점이나 탄방점은 정상영업하니 그쪽으로 쇼핑을 가 달라고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말했다.
◆소비자 발길 시장으로 돌리게 할 ‘머스트 아이템’이 없다
26일 저녁부터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형마트와 SSM의 휴업에 대해 ‘공감한다’면서도 그 대안으로 전통시장이나 동네 슈퍼를 꼽지는 않았다.
지난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들어서기 시작한 대형마트가 이미 생활의 일부 또는 소비패턴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또 과거에 했던 선택이 굳어지면(관성화) 외부환경의 변화에도 쉽사리 그 선택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경로의존성’으로도 설명해 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새로운 선택(전통시장)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편익이 기존의 것(대형마트)을 대체할 만큼 크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 시민들은 대형마트(공산품)와 SSM(적시 소량 구매), 전통시장(제수품목), 아파트 장터(간단한 찬거리) 등으로 각각 입맛에 맞게 시장을 분류·선택하고 있었다. 구매품목에 따라 시장의 형태와 편의성, 접근성 등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의무휴업 이틀이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려워 보였다.
한편 지역 최초 휴업을 맞은 27일 낮 12시, 코스트코 앞에선 점포로 진입하려는 차량들을 막기 위해 나온 직원들이 “‘강제 휴무’로 인해 영업을 하지 않는다”며 고객들을 돌려보냈다. 점포 앞에 ‘가오점 등은 정상영업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건 홈플러스에서도 휴업사실을 몰랐던 일부 시민들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