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간 반 동안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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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간 반 동안의 깨달음
  • 문희봉 (시인·수필가·평론가)
  • 승인 2016.06.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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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잣빛 하늘, 5월 말에 어울리지 않는 날씨가 나의 산행에 도움을 주었다. 산행담당자의 설명은 약 다섯 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 했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가학산 자연휴양림에서 전망대까지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를 택하라고 했다. 나는 두 시간은 너무 약하다고 판단했다.

별뫼산을 오르는데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길들이 내 앞에 펼쳐져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밧줄을 힘껏 부여잡고 오르는 험한 바위등 위에 곱게 부서지는 아침햇살이 융단이불같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산을 오르는 일행들이 형형색색으로 차려입은 등산복에도 아침햇살은 어김없이 파고들었다.

얼마 아니 오르니 관자놀이에서 어렵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제 산행시작 30분도 안 되었는데 말이다. 인솔자에게 물으니 이제 이렇게 어려운 코스는 없다 했다. 그 말을 믿었다. 아뿔사, 그게 아니었다. 별뫼산을 거쳐 가학산, 흑석산을 오르는데 만만한 곳은 없었다. 스틱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몸을 최대한 낮추어야 오를 수 있는 곳들이 많았다. 이건 산행길이 아니라 산악훈련용 길이었다.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고 오르면 또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되돌아갈 수는 정말 없었다.

내가 직접 일궈온 산책길이라면 자연 풍광이 아주 좋으면서도 경사 2~30도 정도의 평탄한 길이다. 그런 길이 그리 많겠는가? 수없이 많은 돌멩이들이 땅속에 묻힌 불모의 황무지에서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핀 낙원으로 변모한 길을 바라보며, “인간은 집을 짓고 조물주는 정원을 만든다.”는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만든 산책길'이 있다. 이제 시작된 길도 있고, 제법 완성된 길도 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보람도 느끼고 새로운 에너지도 얻는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 길이 나 혼자 만들어낸 길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힘, 하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도 오늘 내가 일군(?) 등산로를 걸으며 겸손을 배우기로 했다.

삶이 무거워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영혼이 쉬고 싶다 신호를 보내오면 산행하라 했다. 분주하고 복잡한 일상을 접어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은 가볍게 마음은 편하게 훌쩍 산으로 떠나라고 했다. 등 뒤에 입력된 수많은 전화번호와 약속시간 같은 것은 다 던져버리고 맨몸으로 떠나라고 했다. 이런 마음으로 오르리라 마음 먹었다.

사람이 그리울 때까지 삶의 짜증과 피로의 찌꺼기가 다 사라지도록 살아 숨 쉬는 자연에 몸과 마음을 던져버리리라 생각했다. 이런 마음으로 오르는 것이 오늘 같은 산행에서는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면 질펀한 일상이 그리워지리라. 더 많은 감사의 찬사가 터지리라. 삶의 고통을 즐길 수 있으리라. 산행은 때때로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확인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더 멋지게 돌아오기 위해 산행은 보람과 후회를 한꺼번에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삶의 폭을 넓혀주고 인생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는 세상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들쑥날쑥한 돌멩이가 있기 때문에 시냇물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내 인생도 그래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그걸 쉽게 깨우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거진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 숲속에 각기 다른 꽃과 새와 같은 동물들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오르니 어려움이 반감된다.

    

곱고 성숙한 인격은 고난이라는 돌멩이와 함께해 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인생에 숨겨진 돌멩이들을 바르게 보는 아름다운 삶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나는 산을 넘었다.

흑석산 정상에 올라 막사바람을 맞으며 긍정적인 사고로 변하여진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가족에게, 이웃에게 에너지가 되는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인생에는 왕복표가 발행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누구든 한번 출발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번밖에 없는 나의 인생, 지금부터라도 좀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난의 길을 걸으며 나는 참말로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가슴에 남모르는 불빛 하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불씨로 말미암아 언제나 밝은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어둠을 한 자락 깔고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 어둠이 언제 걷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그 어둠을 통해 빛을 발견하는 사람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쉬운 길만을 걸어가면서 언제 그런 호사를 누릴 것인가? 이런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에게만 그런 영광은 주어진다.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희망의 씨 하나씩 묻어놓고 살아가고 있다. 그 희망이 언제 싹틀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희망의 싹이 트기를 기다리다가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된다. 어려움의 과정을 겪고 나서 말이다.

우리의 삶엔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칠십을 눈앞에 두고 맞는 예방접종은 본 시험을 치르기 전에 치르는 삶의 후반부를 위한 예비시험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이라는 차는 고속도로만을 달릴 수는 없다. 때론 비포장도로, 도로가 없는 곳도 달려야 한다. 예방주사가 목숨을 앗아갈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병을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법칙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나는 오늘 5~60도의 급경사 길을 오르내리면서 얻어내는 호사를 누렸다. 며칠 간은 오늘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후유증이 나를 괴롭히겠지만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무릎 관절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고통의 순간을 이겨낸 후에 찾아올 환희를 생각하며 귀로에 나를 집까지 실어다 줄 버스에 몸을 실었다. 큰 깨달음을 준 해남의 3대 명산에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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