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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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 의원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6.09.1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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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熙 鳳(시인·평론가)

나는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농부였던 부모님 슬하에서 고된 삶을 체험하는 영광(?)을 누렸다. 고향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한 후 대처로 나왔다. 공무원이 되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고향 농촌에서 퇴비냄새와 함께 성장했다.

농촌의 일과는 일출 전부터 일몰 후까지 계속된다. 나의 일상은 9시부터 시작되었다. 아침을 먹고 출근시각까지는 두어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 나는 아버지의 농삿일을 도왔다. 논에 무더기무더기 쏟아놓은 두엄 펴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몸을 닦고 출근했다.

주말이면 외양간과 돼지우리 청소를 했다. 외양간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돼지우리를 치우고 나면 그 냄새가 오래도록 내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농촌에서 그 냄새를 싫어한다면 그곳에서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돼지·소똥 냄새가 좋다. 농경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농촌의 냄새를 싫어한다는 것은 한국인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지난 달에는 행정복합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국무총리 출신 7선(選)인 이 모 의원(무소속)이 '자연의 냄새'를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는 작년부터 세종시 전동면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3주 전쯤 인근 주민이 밭에 뿌린 퇴비에서 냄새가 나자 지난 8월 18일 세종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국회의원도 고약한(?) 냄새를 못 견딜 수는 있다. 그래서 관청에 하소연할 수 있다. 그걸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세종시 대응이 요란했다. 행정부시장과 간부급 공무원들이 이 모 의원 집으로 찾아갔고, 세종시는 퇴비 성분 분석까지 의뢰했다. 당황한 주민은 흙과 섞여 있던 퇴비 15t을 모두 거둬들였다.

여느 귀농·귀촌자가 이런 민원을 제기했으면 세종시가 이렇게 부산을 떨었을까. 이 모 의원과 이 모 세종시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무총리와 행복도시건설청장으로 세종시 건설을 추진했던 인물들이다. 국회의원이란 자리, 시장과 맺은 인연이 없었다면 공무원들이 그렇게까지 법석을 피우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나 같은 평범한 시민이 민원을 제기했어도 그렇게 법석을 떨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 당에서 '퇴비 무죄, 황제 민원 유죄'라고 비난했다는데 여기에 민심이 어느 정도 담겨 있으리라 생각된다. '최대한 자신을 낮추라.' 어느 귀농 안내 책자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방법'으로 소개한 귀농인의 자세다. 이는 그곳에 살고 있는 귀한 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다.

이 모 의원 전원주택 주변에 거주하는 모씨는 지난 10일쯤 900여㎡의 밭에 최근 건강 열매로 인기를 얻고 있는 아로니아를 재배하려고 퇴비를 뿌렸다. 이 냄새가 원인이었다. 이 모 의원 민원에 세종시 행정부시장과 간부급 공무원들이 이 의원 자택으로 직접 갔다. 농부인 모씨는 이 모 의원의 민원 제기 이후 밭을 갈아 엎었지만, 세종시 간부들이 방문한 뒤에는 아예 흙과 섞여 있던 퇴비 15t을 전량 수거해 버렸다.

    

‘농민의 생계 터전인 농지 근처로 국회의원이 이사를 갔다고 해서, 퇴비를 주지 않고 어떻게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단 말인가?’ ‘공직 사회와 지역 농민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특권 의식’의 발동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악취방지법에 따르면 영농을 위해 밭에 뿌려진 발효퇴비는 악취배출시설이 아닌 만큼 시설개선명령 등 행정조치 대상이 아니다. 세종시가 실시한 악취 배출치 측정도 당연히 불필요한 행정에 해당한다. 사후약방문이다.

폐기물관리법에 의하면 가축분뇨를 발효시켜 만든 퇴비는 해당 법률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시가 폐기물 검사를 의뢰한 것 역시 이 모 의원의 특권의식을 배려한 무리한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가습기에 쓰인 모 제품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시켰다. 사망자도 많이 나왔고, 지금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냄새도 없는 물질이었다.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제품으로 가습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홍보하여 선량한 소비자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떤 엄마는 한겨울 가습효과가 높다고 어린 아이 호흡기 가까이에 대주어 그 물질이 바로 폐로 흡수되어 치명상을 입었다고 아이에게 엄마가 몹쓸 짓을 했다는 자책으로 울먹였다. 자식을 잃은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요즘 퇴비는 음식물 찌꺼기를 주원료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텃밭을 가꾸고 있는 사람인데 이 퇴비가 냄새는 약간 난다. 그런데 이 냄새도 밭에 뿌리고 일주일 정도면 모두 사라진다. 농사를 지으려면 퇴비 없이는 안 된다. 화학비료보다는 백 배, 천 배 낫다. 공해를 배출하는 공장도 아니고 일주일 정도면 모두 사라지고 마는 이 냄새로 하여 힘깨나 있는 사람이 귀농하여 농사를 지어보려 한 농부의 용기를 짓밟아버렸다.

내 집 주위에서 농사 짓느라 고생한다는 칭찬과 격려의 말은 못할지언정 농민의 가슴에 독약을 뿌린 이 모 의원은 바로 해당 농민에게 사과하고 허물어진 그의 등을 토닥거려줘야 한다. 이건 분명 갑질이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데에 울분을 느낀다. 나는 이 모 의원에게 묻는다.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의원인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의원인지를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회의원인지 국해(國害)의원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오죽하면 한강물에 ‘국회의원과 신부가 빠졌을 때 누굴 먼저 건져내야 하겠느냐?’는 넌센스 퀴즈가 회자될까. 답은 국회의원이란다. 그에 대한 답은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나는 그 이 모 의원을 ‘퇴비 의원’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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