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게 서명운동이다. 요즈음 뜬 것 없이 서명이라는 말이 날개 돋쳐 팔린다. 본시 서양에서 사용하는 서명은 사인(sign)이라고 표기한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사용하는 인장이
바로 그것이다. 즉 자기 이름을 문서 같은 데에 적어 넣는 것이 서명일진대 서양인은 자기 손으로 필기도구를 사용해 자기 나름의 형식으로 서명한다. 우리를 비롯해 동양인은 어떤 물체에 자기 이름을 새겨서 찍어 넣는다. 인장(도장)이라는 도구의 위력이 바로 그것이다.
어쨌거나 어수선해진 세태를 반영하듯 정치권에서 서명운동(Signature Collection Campaign)이 제법 티를 내고 있다. 국민의 당 박지원의원이 촛불시위에 참가하면서 무슨 서명을 받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써먹겠다고 큰 소리쳤을 때 서명의 위세가 엄청난 게로구나 하고 놀랬다. 실천여부를 아직 보지 못해 어떤 위력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정치인들이 무던히도 좋아 하는 게 서명운동이라는 사실만은 얼핏 짐작하게 되었다.
그런 위력이 바로 여당이라는 집단에서도 생색을 내는 현실에 다시금 놀라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집권당이라는 허울을 쓴 조직체가 두 갈래로 갈라져 친박과 비박이라는 닉네임으로 싸움박질을 해대며 서명운동이라는 걸 내걸고 따져들기를 했다.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탄핵추진에 한몫 끼느냐 마느냐로 엇박자를 내며 소아마비 다리병신 춤을 추고 있다. 탄핵성취에 필요한 ‘찬성의원’ 확보 때문에 그런 거란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탄핵이 결정된다. 탄핵추진 동력인 야당이 몽땅 합세해도 헌법이 명시한 정족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 지겨운 ‘여소야대’라는 말이 지난 총선 후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거대야당 탄생’이라고 무던히 호들갑을 떨었어도 이 경우에는 그 숫자로는 맥을 못 추게 되었다. 그래서 여당의 ‘배신자들’가운데 최소 스물아홉은 필요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여당의 간판을 내걸고 국회에 들어선 인물들은 한결같이 박근혜 대통령의 음덕을 입고도 로마의 영웅 케자르(Caesar)를 모반 살해한 브루터스(Brutus)의 후예가 된 비박들이 볼썽사납게도 탄핵지지라는 사탕(sugar candy)을 입에 물게 되었나 보다. 무대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거구의 비박계 리더도 탄핵을 지지하고 나선 판이다. 하지만 한 길속 사람 마음 알 수가 없다는 속담에 가슴이 조이는 게 현실이다.
비박계 의원들이 탄핵지지를 소리 높이 외치더라도 막상 표결처리에서 또 다른 브루터스 방식의 배신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장사가 없다. 한 번 저지른 배신을 다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은가. 그러니 찬성 절대보장을 맹약하자는 서명운동을 벌인 것이다. 오죽이나 못 미더우면 그토록 추잡한 짓을 생각해 냈을까. 참으로 딱할시고. 언제나 삐딱하고 악발이 행세에 희열을 즐기는 야당이 이런 판국에는 자신감마저 상실할 참이다. 아니 그런가.
자화자찬에 오만불손하고 오만가지 특혜를 향유하는 국회의원 나리도 서로를 못 믿어 사나이 중천금의 한 마디 말이 제값을 누리지 못 한다. 정말 치사하고 오죽잖다. 그 모양이라 서명운동을 한다니 기가 차도 한참이다. 그러다 드디어 12월 2일이 내일로 닥쳤는데도 탄핵발의조차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악독한 서양 중세의 마녀 보다 더 야멸찬 저주를 퍼부었던 미녀 정치인이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거리로 나선 국회의원이 대중들과 어울려 시위문화창달(?)에 큰 공을 세우느라 얼빠지는 것은 다름 아닌 국민모독에 국민무시행태이다. 국회 내에서 점잖게 의사 진행에 따라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라는 명령을 제멋대로 팽개친 행위야 말로 되레 크게 저주 받아 마땅한 게 아닌가. 그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의 약속이라는 귀중한 가치를 훼손하며 서명을 하라고 강권하는 건 더더욱 몹쓸 짓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무더기 넌센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