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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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역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7.01.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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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熙 鳳(시인·평론가)

기차를 탄다. 아나운서멘트가 이채롭다. 귀를 기울인다. 이 기차를 타면 잠시도 한눈 팔 틈이 없다. 미움역에도, 그리움역에도, 행복역에도, 사랑역에도 간다. 별난 기차다. 희한한 기차다.

처음 정차역은 미움역이다. 어떤 류의 질투와 시기건 갖고 있는 사람은 짐을 들고 내려야 한다. 그런데 짐을 들고 내리는 사람이 없다. 그런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모양이다. 죽은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미움과 질투를 갖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자라지 않는다. 뿌리가 썩은 나무가 어떻게 자랄까.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는 것들만 자란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잘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한용운은 ‘나룻배와 행인’에서 그리운 사람 기다리면서 잘 낡아가고 있다고 했다. 성장에는 나이가 없다. 미움, 시기, 질투 같은 걸 키워서 무엇에 쓰랴. 죽은 다음에 비로소 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살아 있을 때 하는 용서라야 진정한 용서다. 용서하는 것만이 자신을 살리고 서로 사는 길이다. 미움, 질투 같은 것은 빨리 쓰레기장에 버려야 좋을 듯하다.

다음에 도착할 역은 어느 역일까? 미움역을 지났으니 질투와 시기의 짐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참을 달리니 멘트가 나온다. 이번 정차역은 그리움역이란다. 이 역에 갈 사람은 보고픈 마음과 설레는 마음을 한아름 안고 탑승해야 하는 역이다. 그리움역에서는 누굴 만날까? 기다림은 춥고 외롭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기다리다 보면 그리움과 사랑의 잔거품은 걷어지고 진액만 남는다. 기다림이란 형벌이 없으면 삶 자체가 절망이요 숨이 막힐 것이다. 기다림은 축복이다. 음식이 발효되면 잘 익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잘 익으면 진국이라고 한다. 곰팡이는 주변을 썩게 하지만 유산균은 모두를 잘 익게 한다. 나 자신이 곰팡이가 되지 않고 유산균이 되는 일은 미움, 시기, 질투 같은 것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이번 역은 사랑역이다. 배려와 믿음의 선물을 가득 간직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역이다. 그런 것들은 가져갈 수 있는 만큼 마음껏 가지고 가야 한다. 아무리 많이 가져가도 무겁지 않아 좋다. 사랑역에 도착하기 위해서 가지고 가야 할 것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으면 친밀감이 생길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랑은 시간을 내주는 것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여유를 만들어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창조적 시간표를 짜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런 선물을 챙긴 사람들만 행복역에 가는 열차에 탑승하실 수 있다는 멘트가 나온다. 탑승한 사람들은 종착역인 행복역까지 편안히 갈 수 있다. 행복역에 가면 다시는 미움역으로의 회귀는 안 된다. 시기와 질투의 짐을 버리고 보고픔과 설레임의 선물을 한보따리 들고 다른 한 쪽엔 배려와 믿음의 선물을 들고 와야 행복역에 도착할 수 있다.

    

행복역에 가는 사람들은 ‘나는 네가 좋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들어 보니 이 말은 이 세상의 어떤 다른 말보다 값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리겠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겠다. 사랑이 깊어지겠다. 행복역에 도착하니 이런 멘트가 나온다. ‘여기는 행복역입니다. 행복역에 오셨으니 행복을 맘껏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열차 여행을 하고 나니 기분이 하늘을 날 것만 같다.

사랑을 늘 처음처럼 새롭게 하는 비결이 있다고 데이비드 사이먼은 말한다. ‘지키겠다.’, ‘이겨내겠다.’, ‘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다 보면 그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실행이 없는 다짐은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 사랑은 다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리움과 사랑, 행복이란 반찬으로 식사하는 사람의 얼굴은 매일 매일이 잘 펴진 낙하산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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