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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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삶
  • 文 熙 鳳 (시인·평론가)
  • 승인 2017.03.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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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熙 鳳 (시인·평론가)

먹을것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저 배가 부르면 좋았다. 명절이 되어 설빔이나 추석빔 얻어 입을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던 기억이 새롭다.

기차를 타려면 낡은 완행버스를 타고 20㎞나 되는 거리를 더 나가야 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도 3㎞는 족히 걸어야 했다. 기차를 탄다는 것은 하나의 동경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에 이르러서야 수학여행을 경주로 가는 바람에 기차를 타게 되었다. 창밖 풍경은 나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평야지대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우리 대한의 산천은 경이에 가까운 신비 그 자체였다.

어려운 생활이면서도 그걸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내 뇌리를 스친다. 육십년대 후반 이십대 초반의 나이로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교단에 처음 섰을 때의 그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4㎞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완행버스가 있긴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과 차내에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할 처지를 생각하면서 마냥 걸었다. 지금처럼 운동이라 생각하면서 걸은 것도 아니다.

고향에서의 십 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도시로 나왔다. 참 어렵게 살았다. 혼자 벌어 살아가기에는 정말 어려움이 뒤따랐다. 아이들 둘에 우리 부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아주 열심히 돈을 버는 것(봉급밖에 다른 수입은 없었지만)과 더 열심히 돈을 아끼는 일밖에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에서 쌀 가마니라도 부쳐오는 날이면 주인집 리어커를 빌려, 밀고 끌고 3㎞나 되는 수하물집하장까지 가서 실어왔다. 몇 정거장 걷는 일은 예삿일이었다. 삼십 중반의 뜨거운 청춘이 대전 바닥에서 아득바득 살아남기 위해 수없이 짐을 싸고 풀고 다시 쌌던 일들이 하나둘 환상처럼 되살아난다.

이제는 아픈 곳이 하나둘 늘어난다. 삼십대 초반부터 나를 괴롭힌 안구건조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항상 충혈되어 있다. 흐리멍텅한 눈이다. 언젠가 보았던 애견장이라 불리는 곳의 닭장 같은 철창에 갇힌 가여운 똥개들의 눈이 유독 나른하고 서글퍼 보였다. 내 눈이 아마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신장결석과 요로결석도 나를 고생시킨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다. 내가 죽고 나서 다비식을 거행한다면 아마도 누구보다도 사리가 많이 나올 것이다.

이러구러 살다 보니 어렸을 적 육십 고개를 넘기던 노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백여 호가 넘던 마을이었지만 육십 잔치를 하던 분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한참을 올려다 보이는 나이였다. 이제 고희를 넘어서다 보니 나랏님은 지하철은 무임승차해도 된다 자비를 베푼다.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제는 지하철만 타면 무임으로 서울까지, 인천까지, 춘천까지도 여행하며 조국의 산천을 완상할 수 있다.

이 나이는 유치원생에 비유된다. 유치원생의 나이는 호기심에 젖어 있는 시기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신기한 것들뿐이다. 인생 칠십에 할 일이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른다. 그림그리기도 해야 하고, 악기 하나쯤도 배워야 하고, 행서나 초서도 써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

    

거기다가 봉사활동도 해야 한다. 내 기능을,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재능 기부를 하면서 사는 삶은 보람차다.

지금은 어린 시절처럼 먹고 입는 것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 중의 제일은 잘 먹는 일이다. 어른들이 들려주었던 말이다. ‘아무개야! 들어갈 때 마셔라(먹어라). 안 들어갈 날 곧 온다.’ 먹을 것을 앞에 놓고도 몸이 거부하여 먹지 못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날이 새면 몰라보게 달라지는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과의 호사도 누려야 한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한다. 잘 먹는 것이 건강지키기의 척도다.

9988234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누워 있다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잘 먹어야 한다. 몸이라는 것은 조금 돌아보면 그 맛을 기막히게 알아서 계속 편함만을 누리려고 한다. 자꾸 자꾸 게으름을 피우게 놔두면 더 놀고 싶어 한다. 아주 습관이 돼서 놀려고만 한다. 좀 두들겨 패서라도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걷기 좋아하던 사람이 앉기를 좋아하고, 앉기 좋아하던 사람이 눕기를 좋아하면 갈 곳은 한 군데뿐이다. 종국에는 산의 부름을 받는다. 침대에 누워 있으나 산에 누워 있으나 누워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움직일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 해가며 내 인생 멋지게 장식하고 떠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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