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조간신문에서 용기 있는 소설가의 말을 들었다. 조선일보 A8 정치면의 기사에서였다. 보수 성향 소설가 논객 복거일씨가 (6월)1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서툴렀지만 용감한 시도였다”고 말했다는 게 기사의 시작이다. 그러면서 그 발언이 논란거리가 되어 있다고 헤드를 장식했다.
그게 왜 논란거리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복거일씨가 충청북도 단양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연찬회 강연에서 “문화계 인사들은 99%가 민중주의 내지 사회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나오는 작품마다 편향될 수밖에 없다. 그걸 바꾸려는 게 박근혜 정부였다”고 말한 게 혹여 논의대상이 되었나 싶다. 더욱이 그는 “언론·예술을 억압하는 건 잘못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작품에 정부 돈이 들어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나 보다. 실로 용기있는 주장이 아닌가.
그만큼 용감할 수 있는 건 그의 젊은 날이 말해준다. 그가 대학에 입할 때 남긴 일화가 있다. 내 대전고등학교 동창생이 일러 준 이야기이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한 동창생 라웅배 전 경제부총리가 그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겪은 일이다. 입학시험 채점결과가 나오자 동료 교수가 그에게 멋진 고교후배가 생겼다고 찬사를 보내더라는 것이다. 최고점을 받은 ‘대고 수석후배’가 생겼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성적표를 챙겨봤단다.
틀림없는 최우수 성적이었다. 고맙고도 흐뭇한 마음은 그러나 금세 사그라지고 말았다. 수험생의 출신학교 표기가 어설픈 탓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흔히 단축어로 수기(手記)하는 고등학교 명칭이 만든 가십거리였던 것이다. 대전고등학교를 ‘대고(大高)’라는 글씨로 후려갈겨 쓰다보면 생기는 우스개였다. 대전상업고등학교를 ‘대상(大商)’이라고 성급하게 후려 적다 보니 그게 ‘大高’로 둔갑해 보였던 것이다.
복거일 작가는 내가 영어담당교사로 잠시 재직했던 대전상고의 우수장학생이었다. 수업 중에 그는 누르끄름한 선화지(질 나쁜 종이)에 단어쓰기를 열심히 했다. 학습내용이야 들을 게 없다는 듯 오불관언에 묵묵히 어휘력향상에 진력하는 태도가 칭찬할 만했다. 조금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가 남긴 ‘서울상대 수석’의 에피소드는 오늘도 위력을 갖는다. 그렇게 그는 소설가가 되어 남다른 작품을 생산하고 늠름한 보수논객으로서의 기개를 지니고 있다.
흔해 빠진 황석영류 좌경 작가들에 비해 상상력이 더 풍부한 복거일류 작가가 우리에게는 더욱 듬직하고 흐뭇하다. 돈 많았던 할애비 덕분에 외국의 좋은 대학을 다니고도 학자로서 남긴 업적은 대수롭지 않은 좌빨 백모좌장의 허장성세보다, 모략음모의 주도권장악에 혈안이 되고 국민에게 기만과 오만으로 능청 떨기 바쁜 사이비 애국정치인의 간지러운 교언보다 복거일의 남아일언 “예술에선 다양한 이설들이 있을 수 있고 예술가의 자유는 존중되어야한다”는 논지에 ‘다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작품에 세금이 지원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 훨씬 더 휘황찬란한 용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복거일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