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옵니버스식 구성으로 엮어 나가야 할 말을 제대로 할 것 같아 그렇게 역기로 하였다.
♣1, 인간에게는 말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했다. 무슨 말인가? 인간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말하고 싶은 욕망이 본능적으로 내재돼 있다. 그런데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이 이런 말을 하는자는 사형에 처했다. 한 번 고사를 보자.
삼국유사에 실려 있으니 정사(正史)는 아니고 야사(野史)인 것이다. 여이설화(驪耳說話)에 나오는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의 이야기이다. 경문왕은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컸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幞頭匠) 한 사람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 도림사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고 한다. 본능을 발휘했던 것이다.
♣2, 지금 그 본능을 카톡문자로 발휘하고들 있다.
촛불에 의해 쫓겨난 박 전 대통령과 촛불세력 도움으로 권좌에 앉은 문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카톡문자로 세간에 수없이 떠돌고 있다. 말하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박전대통령은 비박계를 잡지 못해 통치자로서의 한계점이 드러났고, 문대통령은 내 편만 있고 상대편은 없는 편파적인 안목만 가지고 있어 통치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권좌에 앉으려는 자들에게 훈수좀 둬야겠다. 남태령 송덕비(南太嶺 頌悳碑)에 대한 이야기다.
옛날 과천 남태령에 송덕비가 하나 서 있었다. 그 비명(碑銘)에 보면,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
조선조 지방 수령 중에 과천 현감자리는 서울이 가깝고 오가는 고관을 접촉하기 쉬웠던 자리였다. 그리고 세금징수가 많기 때문에 재물을 모아 뇌물을 상납하여 조정의 좋은 자리로 영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천 현감으로 있던 자가 뇌물을 바치고 영전하여 서울로 떠나게 되었다. 현감의 그 꼬라지를 수없이 보아왔던 아전들이 송덕비를 세우겠다며 비문을 어떻게 쓸까 현감에게 문의 하였다.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아전들이 남태령에 송덕비를 세우고 현감에게 제막식을 하고 가시라고 했다. 현감이 잠시 행렬을 멈추고 포장을 벗겼다.
비문에는
“今 日 送 此 盜 (금일송차도), 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라고 쓰여 있었다.
이를 보고 현감이 화를 내기는 커녕 껄껄 한번 웃고 그 옆에 한 줄 더 썼다.
“明 日 來 他 賊 (명일래타적), 내일 다른 도둑놈이 올 터인데.”
이 현감의 도량이 어떤가? 박, 문 두 분께서는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현감이 떠나자 아전이 기가 막혀 또 한 줄을 보태 썼다.
“此 盜 來 不 盡 (차도래부진), 도둑놈들만 끝없이 오는구나.”
선비가 지나가다 이를 보고 또 한 줄을 더 보태어 썼다.
“擧 世 皆 爲 盜 (거세개위도), 세상에 모두 도둑 놈 뿐이구나."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정치하는 사람치고 정치자금 필요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무슨 말이냐구? 그렇게 보면 적폐청산에 걸려들지 않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왜 내 편은 아니구 네 편만 적폐청산 대상이 되느냐는 것이다.
♣3, 절구절국(竊鉤 竊國)이란 고사도 보자.
갈고리를 훔친 좀도둑은 사형당하고,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은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다. 속뜻은 이렇다. 시비(是非)와 상벌(賞罰)이 명분(名分)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법률이나 제도의 허구성(虛構性)이나 불합리함에 대하여 정곡(正鵠)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장자(莊子)> 제10 거협편(胠篋篇)에 나오는 말이다.
적폐청산만 하다보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지 못한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들은 기대감에 부풀게 된다. 그런데 상대편만 향한 적폐청산뿐이지 새로운 희망이 없다. 있다고 해야 국고를 퍼서 선심이나 쓰려는 것이다. 한번 묻자. 나라 빚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 그러느냐고.
절구절국(竊鉤 竊國)이란 의미를 깊이 새겨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