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면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인 것이다. 철천(徹天)이란 하늘을 관통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를 죽인 놈이기에 하늘까지 닿을 만큼 한이 크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한을 풀려면 반드시 잡아서 주리를 틀거나 모가지를 비틀어 죽여야 속이 시원할 게다.
그러나 보자. 그런 짓거리는 우리네 같은 갑남을녀들도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왜냐하면 내 부모를 죽인 그 자를 죽인다면 그 후손들이 나를 잡아 죽이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된다면 내 자손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라님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 그런가 보자.
필자는 며칠 전 ‘문재인 정부의 자충수’라는 제하의 칼럼을 본보에 게재한 바 있다. 거기에 정조임금과 그 부친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노론의 수장 심환지와의 관계를 밝힌 바 있다.
어린 나이 열한 살에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어도,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으면서도 임금이 된 정조는 폭군의 길이 아닌 선군(善君)의 길을 택했다. 왜 그랬을까? 나라님이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게 되면 죽어가는 몸에서 피가 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튈까? 보자, 정조라는 선군이 택한 길을. 그리고 배우자. 속은 쓰리고 아플 것이다. 그러나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하지 않는가?
정조(正祖)는 1752년부터 1800년까지 스물두 번째의 왕을 지낸 분이다. 그 아버지를 죽게 한 노론의 우두머리 심환지(沈煥之)는 1730년에서 1802년까지 살아서 규장각 제학을 지내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누가 그런 대우를 해줬을까? 정조임금인 것이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인물에게 왜 그랬을까? 그것이 나라님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통치방식인 것이다. 나라님은 네 편에게만 하는 적폐청산에 앞 서 통치를 알아야 한다. 백성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법을 앞세워야 하는 것이지만 통치는 나라님에게 주어진 최고의 권력인 것이다. 그런데 그 통치라는 것이 국민의 생명이나 안보에 관계될 때라야만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적을 없애는 것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상생(相生)하는 것에 활용돼야 하는 것이다.
역사기록에 어떻게 남기를 원하는가? 선군(善君)으로 남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정조는 현명했다. 노론 세력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수십 명을 죽여야 했고 그에 따른 수만 명이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죽여야 하는 수십 명과 죄인으로 전락해야할 수만 명도 내 백성인 것이다. 그 가운데는 고급 두뇌인 알파고도 있을 것이고, 서희 같은 외교관도 있을 것이며, 이순신 장군 같은 전략가도 있을 것이다. 정조임금 자신만 울분을 참으면 되는 것이다. 그릇[器] 됨이 크기에 백성 모두를 편안하게 품고도 넉넉함이 남는다.
정조는 아버지의 원수요 노선을 달리하는 심환지와 비밀 편지를 주고받으며 모두가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을 택했다. 그런데 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성명서에서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낍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라.’하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고 하였다.
이제 답은 나왔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만 내리면 되는 것이다. 촛불은 태극기를 들었던 사람들의 손에도 들려진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