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와 발명가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전영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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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와 발명가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전영철 사장
  • 임준수
  • 승인 2018.03.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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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 전 중앙알보 편집국장 대리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날이 밝으면 소년은 해변에 나가 만리포 앞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아스라이 보이는 지평선 너머는 어디일까? 그 곳이 중국대륙이라는 것을 안 때는 초등학교에 3학년이 지나서 였다. 그는 이 다음 어른이 되면 중국에 가서 큰 돈을 벌어 부모님을 호강 시켜 드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난에 쪼들리는 엄마가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소년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안고 모항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은 만리포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막상 입학하고 나니 석달마다 내야 하는 공납금을 걱정하는 홀아버지를 보기가 민망했다. 첫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들어간 어느 날, 소년은 중대결심을 했다. 학업을 포기하고 도회로 나가 돈을 벌어 가난을 벗어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집을 떠나기 전 날, 소년이 찾은 곳은 뒷산에 있는 어머니 무덤이었다. 그는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하직 인사를 했다.

"엄마. 저는 내일 먼 길을 떠납니다. 부디 제 앞 날을 지켜주셔유. 제가 앞으로 사는 동안 에미 없는 자식 소리를 듣지 않도록 술과 담배를 멀리 하겠어유"

소년이 생뚱맞게 이런 다짐을 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와 사별 후 그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부모 없는 자식’ 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그 험담은 엄마 없는 그에게 큰 상처였다. 그래서 남에게서 손가락질을 안 받는 방법으로 첫 번째 떠 오른 것이 금주 금연이었다. 그런 결심을 한 배경에는 술 담배를 가까이 하여 버릇없다고 욕을 먹는 이웃 형에 대한 평판도 많이 작용했다. 소년은 그 후 60세가 다 되기까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

난생 처음 서울 구경을 한 15세 소년이 영등포에서 구한 일 자리는 책받침 같은 합성수지판을 만드는 폴리프로필렌 공장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청소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기술을 익히고 저축을 했다. 그렇게 7년동안 일하며 모은 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든든한 기술이 있었다.

22세 청년이 된 가출 소년은 마침내 공원생활을 청산하고 독립을 했다. 그가 가내공업으로 차린 사업은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이었다. 그게 평생의 사업이 될 줄은 그도 몰랐다. 처음에는 김포에서 시작했다가 얼마 후 미군부대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동두천으로 자리를 옮겼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화학섬유 쓰레기만 찾던 그는 더 많은 쓰레기가 있는 곳이 어디일까 찾기 바빴다. 당연히 그의 눈길은 한강변에 자리잡은 난지도 쓰레기 하치장으로 쏠렸다.

동두천 생활 5년만에 서울에 입성한 29세의 만리포 촌뜨기는 1988년 난지도 허허벌판에 폐기물 재활용 공장을 차렸다. 사업 자금 5,500만원중 3,000만원은 고향의 늙은 홀아버지가 가산을 팔아 마련해 주었다. 당시 난지도는 서울의 쓰레기가 총 집결하는 곳으로 하루에 수백대의 청소차가 들락거려 먼지와 악취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나 이 당돌한 20대 청년 실업가는 어떤 악조건도 개의하지 않고 전국 최악의 불결지대에 생업의 터전을 마련했다.

15세의 소년 근로자는 어느덧 14년이 흘러 팔팔한 청년 사장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경리 사원을 아내를 맞아 자녀를 거느린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결혼 성과에 대해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여직원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계속 일을 맡겼더니 업무 성적도 높아지고 인건비가 줄어서 좋았습니다. 사장이 한 눈 팔 기회를 주지 않는 감시 효과도 있고.. ”

난지도의 목 좋은 곳을 잡아 둔 새내기 사장은 관할 마포구청을 찾아 부지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조립식 가건물을 세우며 많은 궁리를 했다. 난지도에 거주하는 20여가구의 주민을 고용하면 빈민들의 생계도 돕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난지도 사업은 청사진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주민들도 고정수입이 생기자 먼지를 뒤집어쓰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을 마다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쓸 만한 플라스틱이나 비닐류를 고르는 작업이었으나 자신들이 수집한 쓰레기가 플라스틱 제품의 원자재로 쓰여지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젊은 사장은 일과가 끝나면 종업원들이 퇴근한 빈 공장에 남아 기술 연구와 사업 궁리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잘 나가던 난지도 사업은 예기치 않은 재앙으로 5년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공장이 화재를 만나 잿더미가 된 것이다. 주변의 주거용 가건물도 같은 운명이었다. 일부에서는 강제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의 집단 항의를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지위야 어떻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화재였다.

하룻밤 사이에 전 재산을 날린 전 사장은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그의 오뚜기 기질과 10년 넘게 쌓은 영업 신용은 그를 좌절 시키지 않았다. 전사장의 기술과 능력을 신뢰하는 거래업자들이 재기를 도운 것이다. 누구는 자금을 대 주고, 또 누구는 외상으로 설비를 공급했다. 이 같은 도움으로 생긴 회사와 인물이 오늘의 주식회사 국제리프라텍과 대표이사 전영철 사장이다. 전 사장은 이에 앞서 평택에 국제리본산업을 세웠다. 그가 세운 두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1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전영철 사장은 사업가를 떠나서 유능한 발명가이기도 하다. 10여개의 기술 특허를 따낸 그는 17개국에 등록된 합성수지 분야의 국제 특허도 갖고 있다. 기업경영을 하며 밤낮으로 기술개발 연구에 매달린 결과 일 것이다. 회사 안에서 우수한 기술 인력의 양성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그는 기술자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풍토를 한탄한다.

"기술자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때마다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포츠 메달리스트들은 평생 공로 연금을 받는데, 기술 메달리스트에게는 그런 혜택이 없어요. 나는 앞으로 수익금의 40%를 기술자 우대 기금으로 내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고향(태안군 소원면)에는 기능올림픽 수상자 기념관을 세우려 해요"

전사장이 10여년 전부터 매달리는 연구는 버려지는 기저귀를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이미 실용단계에 와 있는 문제의 기술에 대하여 전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에서 폐기 소각되는 1회용 기저귀는 월 2000톤에 이릅니다. 여기에는 빨아 쓰는 행주와 생리대도 포함됩니다. 이처럼 많은 분량을 쓰레기로 버려진는 것은 큰 국가적 낭비예요. 우리 회사는 이들을 분해하여 플라스틱과 펄프 그리고 고형 연료로 재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 사장의 기술자 사랑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이어진다. 두 공장에서 일하는 25명의 종업원 중 10여명은 동남아 출신이다. 이들 중 누가 5년을 근속하면 1개월간 귀국 휴가를 주는 것이 회사 규칙이다. 그 뿐 아니라 전 사장은 귀국 길에 오르는 종업원을 따라가 그의 집에서 4~5일간 머물며 친교를 다지고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선물을 잔뜩 안겨주고 돌아온다. 그래서 그가 고용한 외국인 근로자는 중도 퇴직하는 일이 거의 없고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한다.

전 사장은 고향 근처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에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2002년부터 그가 15년동안 수목원에 낸 후원금은 1억원이 넘는다. 후원회원의 날 나무 경매 때는 팔다 남은 나무를 몽땅 사가는 '큰 손’ 이기도 하다. 만리 타국에 와서 아름다운 자연동산을 가꾼 민병갈 원장(귀화 미국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그는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를 존경하는 기업인 1위로 꼽는다. 유 박사는 기업을 대물림 하지 않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유일한-민병갈 두 사람은 생전에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가까이 지낸 사이다.

전영철 사장은 자신이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세 가지 꼽는다. 첫째는 버려지는 화학섬유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 둘째는 천리포수목원을 도운 것, 셋째는 외국인 근로자를 가족처럼 대우한 것이다. 그리고 못내 아쉬운 것은 평생 고생만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효도 할 길이 영원히 막힌 것이다. 전 사장의 성공적인 삶이 곧 효도였다는 위로의 말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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