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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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배웅
  • 서옥천/ 수필가
  • 승인 2018.08.13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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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귀대시키며
서옥천/ 수필가

 “슬슬 준비해야지 늦을까 걱정되네”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전화기만 보고 있는 모습에 속이 탄다. 직장에 있는 남편도 궁금했는지 출발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늦둥이 아들이 연천 5사단에 입대한 지 100여일 만에 꿀 같은 첫 휴가를 즐기고 귀대하는 날인데 늑장을 부리고 있다. 휴가오던 날 이산가족 상봉이나 되는 듯 버선발로 환영했다. 3박4일이 금방 지나갔다. 아쉬운 마음을 어디에 비길까 부대까지 5시간 넘게 걸린다고 하니 본심과 다르게 독촉을 하는 것이다.

 군번 줄을 목에 걸고 휴가증을 챙기고 대전역으로 가서 병사의 집에 들러 좌석권으로 교환한 다음 내무반 전우들과 나누어 먹을 유명 도넛도 샀다. 전광판 시계를 보며 군 생활 잘 하라는 당부를 하다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 돌변했다. 창구에 가서 확인하니 마침 아이의 대각선 방향에 좌석이 있단다. 역방향이면 어떠랴.

아이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여기서 헤어지기 싫은 걸 여행 삼아 서울역까지만 갈게”

 싫지 않은 표정으로 엄마의 어깨를 살짝 토닥여 준다. 집에서 조마조마했던 기분이 말끔히 사라졌다. 철부지 아기인 줄 알았더니 180cm에 80kg의 군복 입은 아들이 늠름하고 든든해 보였다.

 오후 2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역방향 덕분에 가끔 눈이 마주칠 땐 주고받는 미소만으로도 흐뭇했다. 어느 사이 아이는 이어폰을 낀 채 잠든 모습이 애틋하다. 그제야 내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도저히 서울 가는 차림새가 아니다. 내가 지금 뭘 크게 잘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슬리퍼 신고 동네 산책하듯이 KTX 타고 서울까지 바람 쐬러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본다. 정신 나갔다고 남편의 불호령도 떨어질 텐데. 벌써 서울역이다

“엄마! 이제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알았어. 지하철 타는 거만 보고 갈게”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대고 통과했다. 차가 들어오는지 다들 바삐 움직인다. 아이를 놓칠세라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뛰어 내려가 나도 모르게 열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짜 어디까지 갈려고?”

아이의 작은 목소리에 나 역시도 작은 소리로 답한다.

“적당한 곳에서 돌아갈게. 걱정하지 마”

  출발할 때의 들뜬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많은 승객으로 비좁은 객실에서 갑자기 졸병 아들의 눈치를 보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이름도 생소한 녹양역에서 소요산행으로 환승을 하고 보니 좀 전과는 달리 너무나 조용한 객실에 승객 대부분이 군복 입은 늠름한 장병들이다. 앳돼 보이는 장병은 그냥 짠하고 병장 계급장은 떼어서 아들 가슴에 달아주고 싶을 만큼 부러웠다. 어디서 돌아가야 할지 창밖에 스치는 평화로운 풍경과는 다르게 마음은 여전히 심란하고 복잡했다. 출입문 위에 있는 노선표에 애꿎은 정차역 이름과 몇 정거장 남았는지 셈 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종착지 소요산역이다 식당마다 장병들로 초만원이다. 승강장 길 건너 분식집에 들어가 돈까스를 주문했다.

 

“아들 덕분에 이런 여행도 해보고, 엄마가 여기까지 온 거 기분 나쁘지 않았지?”

“네”

짧은 대답이다.

 머릿속은 이미 부대에 가 있는 듯했다. 참치 김밥까지 한 줄 추가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짠했다.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승강장으로 향한다. 어디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버스가 꼬리를 물고 쉴 틈 없이 달려와서는 승강장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장병들을 집어삼키듯 한 가득씩 태우고는 사라진다. 다른 장병들의 눈치가 보여 아이와는 이야기 나눌 엄두도 못 내고 딴전 피우고 있는데

“차 와요. 저 갈게요“

들릴락 말락 한 마디 남기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벌써 버스출입문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아니 이렇게 어이없는 배웅을 하다니, 손이라도 흔들 마음에 작은 키의 까치발로 차 안을 살폈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고 버스 뒤 유리창에 ‘대광리 39-2’라는 빨간색의 노선번호가 달린 버스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짧은 거리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멍하니 바라보다 승강장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미 어둑어둑 땅거미가 시작되어 주변 상가의 네온사인 간판이 낯설게 눈에 띄었다. 독수리가 병아리 채가듯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 많던 장병들은 썰물 빠져나가듯 일사불란하게 어디론가 다 가버렸다. 예전보다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철조망을 경계로 공기의 맛이 다르다는 말도 있거늘 아이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잔소리처럼 독촉이나 했으니, 버스에 오를 때 눈이라도 마주쳤더라면 덜 섭섭했으려나 묘한 적막감에 갑자기 울컥 소리 없는 눈물이 안경 너머로 뚝뚝 떨어진다.

 여기서 부대까지 50분 정도 걸린다던데 내가 집에 도착하는 5시간보다도 무슨 계산법인지 아들이 가고 있는 50분이 훨씬 더 까마득하니 안쓰럽다. 전화기 하나 들고 나왔으니 손수건도 휴지도 없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이제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기에 역으로 향했다. 출발역이라 승객도 몇 명 없다.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지? 여기까지 따라온 것에 아이의 자존심이 상했나? 아이가 마마보이도 아니고 나도 유별나거나 극성스러운 엄마도 아니었는데 평소 나답지 않은 오늘 일을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나갔나보다. 아들과 헤어짐이 아쉬워 엉거주춤 따라나선 것이 본의 아니게 일이 커졌다.

 사실 오랜 직장 생활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별로 없어 늘 미안해했었다. 말은 아들과 여행이라 했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처럼 서너 시간 내내 열 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달려왔음에도 든든하더니만 혼자 돌아가고 있는 지금 마음 한구석이 구멍 난 것처럼 휑하다. 집 앞 지하철에서 배웅하리라던 것이 참 멀리도 왔다. 궁금했는지 대전역까지 마중 나오겠다는 남편의 전화가 두 통이나 걸려왔다. 정신 나갔다고 호통 칠 줄 알았던 예상과 다른 남편의 반응이 의외다.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무사히 잘 도착했는데, 엄마는 어디쯤인지, 곧 전화기를 반납해야하므로 연락 못 한다고, 군 생활 잘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조심해서 내려가시라는 제법 철이든 인사에 고마움의 눈물이 스르르 고인다. 종일 쇠뭉치처럼 묵직했던 마음이 아들의 전화 한 통에 가벼워졌다.

정신 나간 짓이라 하건 말건 그래도 난 오늘 그냥 참 좋았는데...

이 동행이 먼 훗날 아이에겐 어떻게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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