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 하여라
돌아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 배운 정철 선생님의 시조다. 그때는 그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배우고 외웠을 뿐이지 부모님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도 아흔을 바라보시게 되고 병약하여 자녀들이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60이 넘은 내가, 더구나 암으로 투병중에 있는 내가 정철 시조의 참 뜻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 밥상차리기에 소홀 했던 내가 부모님을 위한 밥상차리기로 나도 모르게 둔갑하기 시작했고, 이런 마음의 변화는 사랑이 듬뿍 배인 맛 있고 영양가 있는 상차림으로 치장되기 시작 됐다.
내 부모님과 사랑하는 언니를 위해, 나는 먹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를 어기고, 나는 먹지 않을지언정 부모님께서 맛있게 드시는 식탁 차리기를 한 것이다. 그 후 식사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행복함을 느꼈다.
부모님께서 식사하시는 동안은 나의 배고픔을 잊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부모님께 더 맛있는 음식을 차려드려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생기는 것이었다. 부모님께서 식사하시는 동안 곁에 앉아 잡수시는 것을 돕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마음은 행복과 사랑의 색깔로 변해 내 만족의 배부름이 되었다.
그것은 효도로 둔갑되고, 얼떨결에 난 효녀로 둔갑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는 어느 날부터는 맘대로 먹으면 곧 죽을 것같은 내가 나를 위한 이기심이 가족을 위한 밥상으로 은근히 둔갑하기 시작했고, 내 맘의 밥상은 사랑으로 치장한, 맛있고 영양가 있는 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 부모님과 사랑하는 이를 위한, 부모님께서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입맛을 해답으로 알고, 나는 먹지 못하는 음식일지언정 부모님께서 맛있게 잡수시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식탁을 준비하다보면 내 맘 속에 번지는 포만감은 평화와 사랑의 색깔로 변해 내 만족의 배부름이 되었다.
그러나 내 멋대로의 내 만족을 위해 내가 아무리 효도를 곱게하려고 부모님 앞에 어린 딸처럼 애교를 부려봐도 순간순간 나 자신을 나쁜 딸처럼 비관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나 온 수십 년 동안 부모님과 별거하며 따로 살아왔기에 마음 바탕에 숨어있는 효도하려는 마음엔 변화가 없지만 겉으로 내뱉는 말은 곱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 나를 우리 부모님께선 나를 곱게 봐주시고 불평을 하지 않으셨다.
최근엔 아버지가 틀이를 하시고 엄마는 임플란트를 하셔서 치아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신다. 그러다보니 틀이같은 경우 잘 맞았다가도 잇몸 변화에 따라 아주 듣기 어려운 소리도 내시곤 한다. 어찌 생각하면 벌써 우리부모님에게도 이런 세윌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해드려도 그냥 귀찮고 번거롭게 생각하시고, “누룽지나 삶아줘” 그러시든지, 아니면 “그냥 밥 삶아먹자”고 하시기 때문이다.
나도 같이 덩달아 먹어보니 어느 땐 그 평범한 음식도 좋다는 생각에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모든 사람 각자의 성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먹는 음식이 따로 있었으니 내 멋대로의 대리 만족을 위해 열심히 밥상을 차렸던 시간들이 불효나 저지르진 않았는지 조심스러웠기에 이제는 식사시간 때마다 여쭤본다.
“점심에 뭐드릴까요? 국은 어떤 거로 드릴까요? 동치미로 드릴까요? 매운 나막김치로 드릴까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우리 유님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