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계파라는 게 있었다. 조선 500년 역사는 당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정당과는 다르지만 그 비슷한 역할을 했다.훈구파니 사림파니, 노론, 서론, 동인, 서인 등 정말 당쟁의 역사는 나라의 운명을 뒤바꿔 놓았다.
나의 편이 아니면 무조건 나쁜 사람이다. 네 편은 인간도 아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진박이 뭐고, 비박이 뭐냐? 친노가 뭐고, 비노가 뭐냐?
왜들 이러는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위 선(線)만 바라보면서 엮어낸 공천형국이었다. 소신이나 철학이나 신념이 없다.눈엣가시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경선의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 경쟁력 있는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다.
공관위원장이라는 사람의 인상이 그렇게 표독스럽게 보일 수가 없다. 국민의 눈높이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야당이 그랬다.싸움이 허접하기로는 지금 여당이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
탈락에는 명분이 있고, 타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당의 정체성 운운 하며 진짜 국민을 위해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을 하던 의원들을 탈락시키니 그분들이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까지 불사하지 않는가?
국민의 정서는 그게 아니다.바른 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런 소인배적 사고가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는 건 참 불행한 일이다.
당의 정체성이 도대체 뭐냐?의석 몇 개를 잃더라도 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말의 뜻을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두 석 잃더라도 그 사람만은 안 된다는 식의 사고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는지 심히 우려스럽다.
그 사람들의 정책에서 ‘미래’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꽤 오래 됐다.요즘은 한두 냥짜리 자리 싸움으로 국민의 심사를 괴롭히고 있다.
국민과 당원의 마음을 저버리고 누구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당내 계파 간 역학 관계만 반영한 공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그러니 우리 정당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제 정책 선거로 돌입해야 한다. 그런데 각 당의 총선공약을 보면 기가 찬다. 선거운동 기간에 돌입했지만 앞으로 4년 간 어떤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약속인 공약대결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거는 정책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절차다. 집권당은 ‘야당 심판’, 제1야당은 ‘집권당의 경제 심판’, 제2야당은 ‘양당 심판’을 내걸었다.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얘기인가. 심판은 국민이 표로 하는 것이다. 여야가 내놓은 정책공약들은 한마디로 ‘무성의’의 극치다. 공천문제로 시간을 끌었으니 공약다운 공약을 만들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미 추진 중인 정책의 재탕이나 연장에 불과하다는 인상이 짙다. 무책임한 복지공약을 쏟아내는 정당은 과연 제 정신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재원조달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 ‘믿거나 말거나’로 굳어지는 공약이라면 신뢰를 잃는다. 대안이 없는 공약들이다.
집권을 감당할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는 당인지 의심스럽다. 그러니 국민은 투표장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절박한 상황인데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의원수를 늘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집안 싸움에만 몰두 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지금 청년실업이 말이 아니다. 12.5%란다. 청년실업이 급증하면 전체 실업률도 동반 상승한다. 신규 취업자수는 자꾸만 줄어든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경험했던 ‘청년 고용 절벽’을 우리가 답습하고 있다. 국가가 이런 상황인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최소한의 공약 같은 걸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은 누굴 믿어야 하는가? 사람답게 사는 것은 수입이 있어야 하고, 튼튼한 국방의 기초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지금 북한에선 연일 도발의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다.
청와대와 서울의 주요 시설을 조준하는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집권당에 표를 주지 말자고 선동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