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질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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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질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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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3.1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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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먹은 것을 도로 토해 낼 때 게운다고 한다. 부당하게 착취한 재물을 도로 내놓는 것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골목 한 귀퉁이에 어젯밤의 취객이 쏟아 놓은 음식 찌꺼기에서 풍기는 악취는 해가 떠올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 정부조직법이 간신히 매듭을 지었다고 떠든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여야 원내 부총무라는 인물들이 돌아가며 합의문을 읽어대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 승전장군이나 되는 듯 으스대며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읽기시간 퍼포먼스 같은 짓을 했다.

그들은 잘 한 일이라고 얼러댈지 몰라도 그 ‘합의’라는 게 게워 놓은 술 찌기처럼 구린내가 진동한다. 무슨 ‘개정안 전격타결’이라는 신문의 표제도 방정맞은 짓이고 ‘정부출범 21일만의 정상화’라고 촐랑대는 방송의 속보타령도 철딱서니가 없다. 이제야 뭘 그리 잘 했다고 넘실대는지 되레 딱한 생각이 든다.

국민은 야당이 물고 늘어진 ‘SO'라는 글자 자체도 잘 몰랐다. 알고 보니 기껏 종합유선방송에 관한 어휘이다. 일반 가정에서 한 달에 얼만가를 내면서 시청하는 텔레비전방송 사항을 가리키는 것을 알게 된 대부분의 시청자 국민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 헛구역질이 난다고 야단이다. 그런 정황을 국회의원 나리들이 눈꼽만치라도 짐작하거나 귀띔이라도 받았다면 이 더티한 행태는 애당초 생기지 않았을 게다.

어지간히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이 원하는 제도를 국회가 승인하는 것을 그토록 많은 시간에 걸쳐 주저앉혔다는 사실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중심제 민주주의를 사보타지 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소수파의 쿠데타에 다름 아니다. 헌법이 허용하는 한 국회는 능청 떨지 말고 대통령이 원하는 제도를 승인해 주웠어야 한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런던에서 보내준 낭보가 그나마 국민의 오그라든 가슴을 펴게 만들어 구더기 같은 정치현실을 조금은 살려 주었다. 못된 망아지들의 소란처럼 국회의 여야원내 총무단이 매일 협의다 타협이다 하는 넋두리를 앞세우고 사진 찍기나 해온 주제라 식상한 국민들은 늦어진 정부의 활동을 그래도 격려해 마지않는다.

따지고 보면 장장 46일이나 걸린 새 정부의 포메이션이라 딱하기도 하지만 대견하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감각과 통치역량이 그의 철학과 이념을 따라 부지런히 그리고 알차게 수행될 바탕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상처투성이가 된 슬프고 안쓰러운 측면이 있지만 그걸 털어버리고 진정 행복한 나라살림을 열어 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몇 가지 건수를 채워서까지 최종타결에 이른 정부조직법 개정과정은 부득불 구역질나는 사건이었다. 그 팩트가 국가기록으로 보존된다는 게 서글프다. 마치 술주정뱅이가 게워놓은 ‘찌꺼기’라는 악명을 영원히 지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정말 구역질이 절로 난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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