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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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새벽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6.10.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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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熙 鳳(시인·평론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제 새벽 다섯 시 반이다.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신작로에 폐휴지를 잔뜩 싣고 힘겹게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약간 경사진 언덕을 힘겹게 끌고 가고 있다. 이 시각에 어디서 저만큼의 폐휴지를 얻어 싣고 가는 것일까? 저만큼의 물건을 고물상에 가지고 가면 얼마나 받을까?

경사진 곳도 아닌데 힘겹게 끌고 가는 걸 보니 나이가 좀 든 사람은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여러 명의 직원들을 부리며(?) 살기도 하는데 그 노인은 혼자가 아니면, 아내, 그리고 손주들의 생계를 책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노인의 아내는 손이 방추(紡錘)처럼 기민하게 쉴 새 없이 움직여도 가난은 못 면할지도 모른다. 그 노인도 모기 앞정갱이 하나 부러뜨릴 힘도 없을지도 모른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이야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겠지만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어찌 천국을 생각하지 않을까.

늘 한기가 등줄기를 다림질하는 세월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빨에 땀이 나도록 움직여도 가난을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세월도 세월이지만 걸음걸이가 뼈 없는 낙지같이 보여 안쓰럽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인생이 한 번은 넘어진다. 그렇다고 포기는 안 된다.’는. 그래도 그 노인의 눈에서는 불길 같은 증오 같은 건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니 그랬던가. 나의 삶에서도 밤길에 절벽을 만난 적이 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십오 만원 전세부터 시작했다. 어렵게 어렵게 모으고 모아 집 한 채 장만했을 때의 기쁨이라니. 남매 낳아 보란 듯 키워놓고, 이제 손주들도 넷이나 두었다. 조그만 아파트지만 내 보금자리는 누구네 집 대궐보다도 낫다고 자부한다.

남한테 고지식하고 무뚝뚝하기가 절간의 절구통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주물러 놓은 메주꼴로 생겼지만 선한 인성 갖고 살아간다 소리 들으니 다행 아닌가?

집안 살림살이야 살아가는데 불편한 정도만 아니면 되지 않는가. 파리똥 깔긴 벽시계가 열 시에 열한  점을 치면 어떤가. 그러면서도 내 평생 남의 것이라고는 쓰다버린 노끈 하나 욕심 내 본 적이 없다. 비록 가족에게 가을이면 하얗게 핀 메밀꽃이 따가운 햇살에 눈이 부신 모습 한 번 제대로 구경시켜 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쥐어짜다 만 빨래 같은 몸과 마음을 갖지 않으려 애썼다. 백정도 칼을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모래 위에 세운 궁궐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산 것이 정말 잘 했다.

    

그 노인에게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옆은 대형병원 응급실이 있다. 응급실 앞에 구급차 경광등이 번쩍번쩍 돌아가고 있다. 이 새벽 무슨 일로 구급차를 타고 왔을까. 그 사람에 비하면 좀 나은 형편이 아닌가?

성공도 우연이 아니고, 실패도 우연이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에 이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그런 일을 하는데 실패한 사람이다. 젊은 날에 비록 실패한 삶을 살았다 해도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하는 삶이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해 본다. 성공은 물질로만 평가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선의 삶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이 노인의 손주들은 노인의 은총을 많이 받겠다. 식물도 햇빛에서 영양을 얻는다. 식물은 햇빛에 민감하다. 햇빛의 품에 안긴 식물은 반드시 변화한다. 손주들도 그럴 것이다. 지극한 고마움을 느끼는 때가 바로 깨달음과 자각과 지혜를 얻는 순간이다. 손주들이 느끼는 지극한 고마움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돕는 것이 곧 남을 돕기 위한 최우선 조건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요즘도 자기가 가진 권력과 재력으로 갑질을 하고, 막말을 하고, 연봉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임금인상을 조건으로 파업을 하고 있다. 이 노인에게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짜증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생각 저 생각해보지만 세상은 참 공평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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