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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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6.12.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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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熙 鳳(시인·평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힘들 때도 만나고, 편안할 때도 만난다. 울고 싶은 날도 만나고, 웃는 날도 만난다. 궁핍할 때도 만나고, 넉넉할 때도 만나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마저 여의고 네 살 아래 동생을 고아원에 보낸다는 친척들의 말에 형은 일단 집을 나간다. 친척아저씨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고아원에만은 맡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무작정 서울행 열차를 탔다. 서울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져 썩은 음식으로 연명했다. 꾀를 내서 그 음식들을 말려서까지 먹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공사장 인부, 시장에서 짐 나르기, 신문배달, 우유배달, 철공소 인부 등 주로 몸을 쓰는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의 신발 뒤축에선 삶의 지친 시간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따라 다녔다. 그의 소원은 빨리 돈을 벌어 동생과 함께 사는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동생에게만은 고통을 물려 주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기특하고 어른다운 생각이었는가? 고생 끝에 동생을 고아원에 보내는 일만은 막아졌다. 이제 형의 나이 63세, 동생의 나이 59세다. 지금 육십이면 젊은이 측에 속한다. 그런데 두 형제의 이마에는 고생의 흔적들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그간의 고된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형제애, 동기로 태어났으니 얼마나 큰 인연인가? 그 형의 동생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평생 이름값 제대로 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이름에는 가치가 부여되고, 가치에는 그것에 걸맞은 가격이 매겨진다. 양계장에 가면 주인이 자주 드나들수록 닭이 알을 많이 낳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동생 또한 형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는지 이건 상상을 초월한다. 자나 깨나 형 생각뿐이다. 부모를 대신해 부모 역할을 해준 형에게 존경의 뜻을 전한다. 형이 보람 있게 보낸 오늘은 어제 세상을 고뇌하던 동생이 그토록 소원하던 내일이었겠다.

요즘 형제의 난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재벌가에서 재산싸움으로 인한 낯 뜨거운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들에게 1억, 2억은 껌 값일 것이다. 나 같은 서민에게는 천문학적 숫자일 텐데 그들에게는 며칠 용돈에 불과하다. 1억이면 1에 동그라미가 여덟 개나 붙는다. 추기경이나 큰스님처럼 돈과는 무관하게 이름의 향기를 길고 넓게 갖는 경우도 드물다.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의좋은 형제’가 생각난다. 형제는 벼농사를 지었다. 가을이 되어 형은 동생이 어렵게 사는 것이 안쓰러워 밤중에 자신의 볏단을 동생 논의 볏가리에 옮겼다. 동생은 형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에 형편이 녹록치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밤중에 자신의 볏단을 형의 논으로 옮겼다. 날이 새면 자꾸 늘어나는 볏단이 이상했다. 그러던 어느 달이 환한 밤에 형제는 자기들의 논에서 볏단을 형과 아우의 논으로 나르다가 그만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그 형제들이 사는 집,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파란색 철대문, 밖에서도 대문 너머로 마당이 들여다보이고, 그 사이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길 것이다. 대문에서 현관으로 통하는 길 양편에 문주란, 국화, 꽃치자, 백일홍을 심은 화분이 길게 도열해 외출했다 돌아오는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줄 것이다.

동생과의 도타운 형제애가 돋보이는 사연이 오늘 어느 TV의 시니어프로인 ‘황금연못’에 등장했다. 안구건조에 시달리는 나에게도 약간의 눈물이 스쳐지나갔다. 동생이 형에게 감사하며 감사패를 전달하는 순간, 내 눈에는 작은 웅덩이만한 눈물이 고였다. 동생의 입술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읽었다. 한 동안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풍겨주는 형제애는 남다른 것이었다.

그들에게 산다는 일은 바로 어제의 일들과 헤어지는 일이겠다. 값싼 사랑보다 짙고 종교보다 깊은 그들의 형제애가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존경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는 암담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부드러운 성품이 강함을 이기고 정신은 물질을 앞설 것이다. 고전소설을 보면 끝에는 모두 잘 먹고 잘 입고 아들 딸 낳아 잘 살았다로 끝나는데 그 형제들의 삶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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