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앞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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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앞치마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6.12.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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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熙 鳳(시인·평론가)

세상에는 많고 많은 그림들이 있다. 그 중에는 좋은 그림도 있고, 나쁜 그림도 있다. 가족 간의 화목이, 배려가 조화를 이루는 가정은 좋은 그림이다. 친구 간의 우정이 돈독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 이상이다.
  밀레의 ‘만종’, ‘송아지의 탄생’, 샤갈의 ‘생일’, ‘마을의 풍경’,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 ‘누워 있는 소’ 등을 우리는 좋은 그림이라 하면서 즐겨 감상한다.
  남녀가 처녀 총각으로 만나 회혼식을 거쳐 백년해로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런 자리에 초대되어 가면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하고 부러움의 시선을 보낸다. 늘 이십 대 중반의 처음 만났던 시절 같이 생활하는 부부들을 보면 내 몸에도 탄력이 붙는다.
  찰떡 궁합을 넘어 본드 궁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자세히 들어보면 별 내용이 아닌데 시종일관 상대의 얼굴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속삭이듯 말하는 부부들이 많다. 두 사람의 대화가 많을수록 문제는 적어진다는 인생철학의 심오한 뜻을 알고 있는 부부들이다. 살아가는 작은 이야기든 유치한 농담이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환하게 웃는 부부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이제 나도 결혼 오십 주년이 가까워 온다. 남매를 두었는데 큰 아이가 이제 마흔 일곱이다. 손주가 넷이다. 세상 바쁘게 살아왔다. 목적지로 가는 지름길이 어딘가 열심히 찾으면서 달려 왔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종이의 질도 좋지 않았고, 물감의 농도도 맞지 않았으며, 구도도 맞지 않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니 누구 하나 그림 좋다는 평을 해주지 않았다. 자식들도 그림 좋다는 얘기에 인색할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리.
  지금 이 시점에서 못난 사람이 고운 사람 만나 얼마나 많은 호사를 누리면서 살아 왔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난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아내는 연꽃 속에서 피어나는 선녀 같은 모습으로 방년의 나이에 내게로 와서 지금껏 호사 한 번 누리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다. 겸손하고 풍요롭고 검소하고 집안을 우애 있게 하는 성품을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왔던 아내가 지금 고통의 호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일찍이 천식에서부터 시작된 병력은 고혈압, 당뇨, 협심증 등으로 고루 퍼져 지금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 되었다.
  엊그제는 의식 불명 상태에서 2~3분 가량을 헤맸다. 새벽에 일어난 아내가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좀 후에 거실에서 인형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에서 냉수 마실 준비를 하고 있던 내가 바라보니 2~3일 전 소품 가게에서 사 온 ‘소’ 인형이 바닥에 나뒹군다.
  “여보! 왜 그래?”
  “지금 무슨 인형 정리를 하고 그래.”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다. 그러더니
  “나, 이상해.”
한다. 소파로 인도해 앉히고 보니 몸을 가누지 못한다. 게다가 화장실용 슬리퍼까지 신은 채였다.
  “나 살려줘.”
  “나 죽을 것 같아.”
하는데 자세히 보니 동공이 풀려 있었다. 속이 미식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토하는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 체한 것 같으니 바늘로 손가락을 따 달란다.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찔러도 아프단 얘기가 없다. 피도 나오지 않는다.  
  “허, 낭패로군.”
혼자말이다. 응급실로 향해야 하는데 긴장을 한 탓인지 선후를 가릴 수가 없었다. 둘이 살다보니 나도 당황했는가 보다. 발만 동동 구르다 시간만 보냈다. 그러는 사이 정신이 들었다. 지금 괜찮으니 좀 쉬어 보잔다.
  오늘은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날이다. 그 시간을 지나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면 아마도 나는 아내를 잃었을 지도 모른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보냈다.
  호사다마라고 꼭 일주일 후다. 일요일인데 오전까지는 괜찮았다는데 오후 들어 이번에는 허리가 몹시 아프단다. 움직이지 못한다. 부축해야 간신히 움직인다. 이걸 어쩐다. 오후 늦게 당직병원을 찾았다. 사진 판독 결과 뼈엔 큰 이상이 없단다. 전에도 가끔씩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해온 터라 쉽게 나을 줄 알았다. 며칠 후 정밀검사 결과로는 척추에 약간의 이상이 있단다. 그리고 골반뼈도 한 쪽으로 약간 기울었단다. 열흘이 지난 지금도 완전하지 못하다. 지팡이를 짚어야 움직인다.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내에게 절망의 끝은 없는가. 희망의 호루라기를 불어줄 사람은 없는가. 그냥 이대로라도 좋으니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추운 것은 둘이서 손 꼭 잡고 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내를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앞치마를 두를 용의가 있다. 혼을 불태울 수 있는 취미도,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까운 벗도, 믿음직스런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나에게는 강 건너 희미한 불빛 구경이란 말인가.
  만남 중에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만남이 부부의 만남, 즉 무촌으로서의 만남이 아니던가. 남남으로 만나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살아왔는데 아직도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좋은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생각이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아주 멋진 그림을 앞치마를 두르고서라도 그리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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