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거기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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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거기는 어때?
  • 민효선/수필가
  • 승인 2017.01.0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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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효선 생활 수필
▲ 민효선

오늘은 친정 할머니 기일이다. 늦지 않게 오라는 엄마의 전화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 시어머니 모시고 병원도 다녀와야겠기에 맘이 부산하다. 시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노인성 알츠하이머. 기억을 못하시는 일들이 자꾸 반복되어 일어난다.

 82세 어머니는 너무도 건강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셨던 분인데, 그 기억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모시고 다닌다.

겨울인데 날이 차지 않다. 햇볕이 따스하다.

어머님을 모시고 늘 다니던 길로 병원을 들어섰다. 그 길엔 알록달록 꽃 상여가 길 한쪽에 자리한 걸 늘 보곤 한다. 장례식장 뒤편이라 사람의 왕래가 뜸하니 그곳에 세워 두나 보다. 우린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고 지름길인 병원 뒤 쪽문을 이용한다.

난 그 상여를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진 코끝이 찡했던 그 겨울이 생각난다. 무척이나 추웠던 그 겨울, 장정 열두 명이 하얀 꽃상여 메고 비스듬한 산비탈 오르던 그때.

할머니 돌아가신지 벌써 이십 년도 넘었다. 특별히 병명도 모른 채 그냥 노환이라 그랬다. 병원에 며칠 입원하시고 바로 퇴원하셔서 한 달 정도 누워계시다가 아무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가셨다. 전화를 받고 친정에 도착하니 할머니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병풍 뒤에 모셨다는 말에 조금은 무서워 병풍을 제치고 마주할 용기를 내보지 못했다.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장례 준비하는 친정 엄마를 따라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집에서 장례를 치뤘기 때문이다. 마치 잔치집인냥 많은 사람들이 왁자하다. 여든을 넘기셨으니 호상이라 하며 떠들어 댄다. 눈물을 흘릴 새도 없었다. 할머니와의 어렸을 적 추억도 더듬을 수 없었다. 부지런히 손님들 음식상 차리느라 할머니와의 사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별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겨울 밤, 그 하늘 밑에 탑처럼 쌓아둔 연탄불만이 이글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구천(九泉)에서 홀로 헤매시게 버려둔 채 눈물도, 울음소리도 없이 그렇게 밤이 가고 아침이 왔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하나, 둘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잠시 조용하던 집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할머니께서 누워계신 방을 향해 마루에 주욱 앉아있다. 염(殮)을 하기 위해서다. 모두 쥐 죽은 듯 마루에 앉아 염하는 아저씨의 동작 하나 하나를 바라보다 그만 통곡하고 말았다. 병풍 뒤 할머니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종 후 처음 보는 할머니 모습이다. 그 순간 나는

‘어?’하고 놀라고 말았다. 새우 등 할머니가 똑 바로 누워계시기 때문이다. 다리 펴고 똑 바로 누워 계신 모습인 것이다.

할머니는 평소에 “다리 쭉 펴고 자고 싶다고, 다리 쭉 펴고 눕고 싶다고” 그러셨는데. 초등학생이던 나는 새우 등 할머니 허리 꼭 끌어 않고 잠이 들 때면 한쪽으로 오래 누워계시질 못하고 이내 끙끙 소리 내며 방향을 바꾸셨던 할머니. 환갑 즈음부터 허리가 구부러지셔서 지팡이 없이는 가까운 곳조차도 다닐 수 없으셨던 할머니. 수 많은 날을 새우 등으로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시더니, 할머니 원 풀었네. 삼베옷 입으시고 다리 쭉 뻗고 누우셨으니.

손톱, 발톱 깎아 작은 주머니 속에 담아, 수의 양쪽 주머니에 넣고 조심스레 입 벌려 한 숟가락 쌀을 입속에 넣는다. 그리곤 누런 삼베 한 줄, 새 하얀 삼베 한 줄로 발부터 무릎, 허리를 동여 매기 시작한다. 점점 할머니 모습이 새 하얀 삼베 속에 싸여 사라지기 시작한다.

난 사라져가는 할머니 모습에 어찌할 줄 몰라 할머니 곁으로 뛰어갔다.

마치 누구도 건들면 죽는다는 듯, 아무도 만지지 말라는 듯 할머니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안 된다고 우리 할머니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차가운 할머니를 부등켜 않고 얼마나 울었던가. 차가왔다. 나의 두 손으로 온기 있는 두 손으로 차디 찬 할머니의 얼굴을 만져본다. 할머니의 오똑한 콧날 위로, 감겨진 두 눈 위로, 머리 칼 귀 뒤로 가지런히 쓸어 넘겨드리며 “할머니 잘 가. 잘 가”

    

 할머니의 차가운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

곱디 고왔던 할머니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가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프다는 걸 알았다. 이런 것이 죽을 듯한 아픔이라는 것을. 숨 쉬는 게 힘들다는 것을.

나에게 사별의 아픔을 느끼게 한 할머니. 할머니의 죽음은 내 어렸을 적 추억을 슬픔으로 안고 떠나시었다.

하얀 꽃상여가 훨훨 탄다.

코끝이 찡한 그 겨울바람에 한 줌의 재가 되어 훨 훨 날아간다.

아주까리기름 바른 하얀 쪽진 머리, 비녀 꽃아 정갈히 단장하고, 고무신 가벼이 신고, 선녀처럼 사뿐히 가소서. 지팡이 없이 걸어가소서. 그리 하소서.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철부지였던 내가 쉰이 넘었는데도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 혼자 두고 내려오던 그날..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였을까? 유독 사랑이 많아서 손자. 손녀를 끔직이 여겼던 할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을까? 난 늘 할머니가 보고 싶다.

가끔 친정 엄마와도 할머니 애기를 나눈다. 엄마가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그 때 염할 때 안 무서웠냐고? 지켜보는 모두가 놀랐었다고. 덥석 나서서 삼베 속에 묻혀저 가는 할머니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으니 많이들 놀랐다고. 그러나 나는 무섭지 않고 오히려 말없이 묶이는 할머니가 한없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하나도 안무서웠다고, 감춰져 사라지는 할머니 모습을 볼 수 없단 생각에 미칠 것 같아서 그리했다” 고 말했다.

겨울 밤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불 나란히 깔아 놓고 할머니 곁 서로 차지하려고 몸싸움 하던 그때가 그립다. “효선아”부르시던 그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 효선이 이만큼 자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할머니도 지금은 허리 안 아프시고 행복하시죠?”

깊은 겨울인데도 할머니 사랑만큼이나 따뜻한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

“할머니, 거기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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