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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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참 잘했어.
  • 민효선/ 수필가
  • 승인 2017.02.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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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효선/ 수필가

덮여 있는 눈꺼풀 위로 어둠이 느껴진다. 물 먹은 솜 같은 무거운 몸을 뒤척여 본다. 몇 시일까? 지금은 몇 시나 됐을까? 세상이 온통 고요하다. 쥐 죽은 듯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눈을 뜨기 싫다. 눈을 뜬다면 날 밤 샐 것이 분명하기에 가만히 어둠을 지켜본다. 오늘 유난히 이 어둠이 싫다.

15년을 함께한 친구를 먼저 보냈다. 세 차례의 기일(忌日)을 보내면서 그녀에 대한 기억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죽음을 맞기엔 너무도 억울한 나이, 받아들이기 힘든 그녀의 죽음. 기일만 되면 끝내 암을 이기지 못하고 떠난 그녀가 생각난다.

요즘 흔히들 세 명 중 한 명이 암이라고 한다. 우수개 소리처럼 지나쳐 버린 말들이 작년 여름엔 공포로 찾아왔다. 함께 모임을하는 친구의 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두려움이 생겼다. 파노라마처럼 먼저 간 친구가 생각났다. 순간, 다음엔 누굴까? 그 다음엔 누구에게 암이 찾아올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왔다. 아! 이 모임을 그만해야겠구나, 없애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 모임에서 두 명이나 암이라니. 적지 아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란 맘이 진정되기도 전 일주일 후 다른 모임에서도, 또 다른 모임에서도 전해지는 불행한 암 소식에 멘탈(mental) 이 나가버릴 정도의 충격에 휩싸였다. 암으로 이미 친구 한 명을 잃었던 마음에 또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하는가라는 무섭고도 두려웠던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그들은 부지런히 그들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으며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친구 한 명은 자연치유 방법으로 암을 이겨내겠다고 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만날 때마다 설득하였다.

“넌 아는 게 병이다” 속상한 맘에 뚝 던진 한 마디.

“바보 왜 아는 게 병이야? 아는 게 힘이지” 오히려 핀잔을 주는 친구의 완강한 모습에 화가 나서 “그래 너 잘났다. 너 똑똑하다”며 한 마디 던진 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었다. 아무리 말을 한들 현대의학을 불신하는 친구에게는 다 소용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치유에 대한 확신에 찬 모습을 보게 되며 서서히 친구의 고집에 체념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가을이 왔고 그즈음 친구는 ‘자연치유 센터’란 곳에서 한 달 동안 치료를 하겠노라 희망 찬 모습으로 입소하였다. 그 후 배우고 익힌 요법들을 갖고 열심히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겨울을 났다. 그녀의 방법이 옳은 것인지의 의심과 걱정으로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몸무게가 많이 빠지고 자연치유를 위한 섭생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또한 수술을 간절히 원하는 남편과 마주 하는 게 힘들단다. 가족들의 협조를 적극 바라는 친구의 맘과 다르게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맘은 또 다르리라 생각된다. 가족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쯧 쯧 힘없이 혀 차는 목소리가 핸드폰 넘어 전달되어진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체념해야 하는 일이 친구를 맥 빠지게 만드나보다.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을 위해 병원에 가야한다는 것이 친구에겐 영 내키지 않는 듯했다.

그가 병원을 찾았을 때 다행히도 더 많이 전이 되지 않음에 감사하며 수술을 하였다.

수술실에서 나온 친구의 남편이 오랜만에 웃는다. 그동안 맘고생을 어지간히 한 모양이다. 몸무게가 10킬로나 빠졌다고 한다. 친구는 저보다도 더 남편을 걱정했다. 남편은 한시름 놓은 듯 편해 보인다. 그런데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모두들 이구동성 잘했다고, 수술하길 잘했다고 격려를 하는데, 그녀는 아무 감정의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다. 체념하듯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해버린 수술 때문이었을까? 어떤 만감이 교차 할까? 두 눈 꼭 감은 저 편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선택한 수술에 대한 후회일까? 자연치유에 대해 너무도 확신에 찾던 그녀의 방법들이 옳았던 것일까?

자연요법을 포기하고 현대의학에 생명을 맡긴 후 수술을 마친 친구를 병원 침대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잠이 오질 않는다. 아직도 어둡다.

    

이제 좀 자자. 하~아나, 두우~울, 세에~엣. 잠을 청해본다.

그러나 잠이 오질 않는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자연 요법으로 치료하겠다던 친구가 기어이 현대의학에 몸을 맡기는 것을 보며 혹시? 하는 불안감에 잠이 오질 않는 것이다.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며칠 전 암을 이긴 마흔여덟의 만학도가 학위수여식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2010년 암 진단을 받고 힘든 시기를 봉사단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활동 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삶은 의미가 없다. 다른 삶을 살아보자”며 또한 학업의 길을 선택 했다고 한다. 새 삶을 선택한 그녀의 긍정이 통해서였을까. 병원으로부터 완치되었음을 듣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한 것이 나에게 행운을 안겨준 것 같다”며 주어진 제2의 인생을 보람과 열정으로 채워가며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빛이 났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린 모두 아플 수 있다. 어찌 아프지 않고 살아간단 말인가.

인간의 몸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병마와 싸우며 살아간다. 암은 시간이 필요한 내부의 적이다. 내부의 적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물리칠 수 있다.

자신과의 싸움을 할 때 현대의학은 응원을 해준다. 우리는 이 현대의학의 응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때를 놓치면 자신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야, 참 잘 했다구. 진즉 받아들였어야 했어. 이제 안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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