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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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가기 전에
  • 윤기한 (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17.05.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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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한 (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5월은 싱그럽다. 모든 게 싱싱하고 향기롭다. 청라언덕이 짙푸르다. 신록의 계절인 것이다.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얼마나 귀한 달이기에 그토록 아낀다. 시인 김영랑은 5월을 예찬했다. “ . . .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렀다 /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 . .”

여왕꽃 장미가 제자랑에 겨운 5월은 그 초하루를 ‘근로자의 날 May Day’로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이 한껏 흥을 돋우며 자기 위치를 과시한다. 그런 축제로 비롯한 5월은 우리나라에서 ‘가정의 달’로 존중된다. 게다가 올해 5월의 달력은 숫하게 많은 ‘날’로 채워져 있다. 차례로 살피고 따져보자.

우선 석가탄신일이 눈에 띤다. 5월 3일이 음력으로 4월 초 파일이 되어 자비를 베푸는 날이다. 5일은 어린이날로 우리의 미래를 가꾸는 꿈에 젖으며 신이 난다. 8일에 효심어린 정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미풍양속 어버이날이 열아홉 순정을 아끼는 젊은이들을 축복하는 성년의 날과 겹쳐 있다. 9일은 엉겁결에 얻은 대통령선거의 날이었다. 복 터진 로또가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런 행운을 기리기 위해 10일에는 유권자의 날로 국민이 모처럼 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그날이 바다식목일기도 해 물속 깊이를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누렸다. 11일은 입양의 날이라 프랑스의 여성 장관이 된 한국입양아의 출세를 자랑하는 재미가 있었다. 15일에는 스승의 날이라 앞당겨 제자 박사들로부터 푸짐한 백숙잔치를 대접 받고 흐뭇했다. 그날이 가정의 날이기도 했다.

이 기쁨을 제친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18일이어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 높여 불러야겠다. 19일에는 전등으로 세상을 밝혀 준 고마움을 간직하며 발명왕 에디슨을 기억하는 발명의 날을 맞았다. 세계인의 날 20일에는 글로벌 시대의 내 좌표를 재확인하고 풍요로운 성장 속에 여름을 실감하는 소만이 들어 있는 21일은 천생연분 내외가 삶의 값을 높이는 부부의 날이었다.

    

어쩌다 팔자 사납게도 탄핵이라는 올가미를 쓰고 구치소에 수감된 지 53일 만에 감색 사복의 앞가슴 왼쪽에 빨간색 글씨로 ‘나대불츠(나: 최순실 게이트사건 연루자, 대: 미르 K재단 모금강요와 대기업뇌물사건, 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사건, 츠: 한국동계스포츠센터사건 등의 뜻-서울구치소 호송인 분류표시)’라고 쓰인 원형 수용자 배지에 ‘503’의 수인번호를 달고 서울지법 대법정에 출두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게 된 게 23일이었다.

이 따위 재난을 미리 막지 못 한 무능을 경고하는 방재의 날이 25일이었다. 그러기에 그야말로 즐거운 단오인 30일에는 치맛자락 휘날리며 그네 타는 미녀들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보고도 싶다. 31일 바다의 날에는 모처럼 바다구경에 나서고 싶기도 하구나. 그나저나 이달 5월은 종합소득 신고기간이라 오죽잖은 수입에 세금폭탄이 두려운 5월이어 어서 가라. 참으로 많은 무슨 무슨 날들이여.

아무리 녹음방초 우거지고 쌩쌩대며 성장을 자랑한다 해도 밑바닥 민초들에게는 시시덕거리는

푸른 기왓장들의 함성이 들판의 새소리만 못 하게 들릴지어다. 그래도 무명의 예찬자는 노래한다. “5월은 그대 / 그대가 내게 왔고 / 그 속에 내가 있어 / 행복합니다”. 5월이 가기 전에 그래서 5월을 차라리 버리고 싶어지는 게다./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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