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그리고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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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그리고 수필
  • 권예자/수필가
  • 승인 2017.07.15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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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전반은 몰라도 마지막 행적은 정확한 사람이 있다. 논개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백과사전에서 논개를 검색하면 “ ?~ 1593(선조 26).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전북 장수 출신으로 성은 주씨(朱氏). 1593년 진주 싸움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전으로는 논개의 출생 시기가 1574년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라하며, 네 개의 갑술이 들어가는데, 술자가 개 술(戌)자라 '놓(낳)은 개'라 하여 '논개'라 불렀다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기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난 초여름 우연한 자리서 논개를 수필과 연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다. 평소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희한하다. 암튼 그날 우연한 언급이 오늘 이런 글을 쓰게 한다. 해서 나름대로 논개와 수필을 비교해보려 한다.

논개는 원래 양반가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죽자 천하 건달인 숙부가 토호인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팔고 행방을 감추었다. 이것을 안 논개 모녀가 외가로 피신, 우여곡절 끝에 최경회의 소실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아리송하다.

수필은 소설처럼 방대하거나 시처럼 함축성은 없으나 긴 이야기도 담을 수 있고 짧은 일화로 엮을 수도 있다. 해서 소설은 여러 분야에 많은 경험을 한 잡놈이, 시는 상상력과 비유를 충분히 구사할 능력이 있는 거짓말쟁이가, 수필은 담담한 선비가 잘 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맞기도 틀리기도 하는 말이다.

논개는 일본군이 진주성을 짓밟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의분하여 그 한을 풀 생각을 하였다. 수필가는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보고 감동하여 수필을 쓰고 싶은 느낌을 받는다.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서 참석하여 왜장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수필가는 주제에 알맞은 합당한 소재를 선택하고 깊이 관찰하여 글의 큰 틀을 구상한다. 그녀는 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주연에 참석하여, 왜장에게 술을 권하여 취기를 돋우며 호감을 얻는다. 수필가도 소재를 통한 문단 하나하나를 반지를 끼듯 치밀하게 짜고,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처럼 곱고 다감한 문장으로 섬세하게 다듬는다.

논개는 술에 만취한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촉석루 아래 바위로 유인하여 그를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수필도 전개된 여러 문단이 하나의 주제로 묶어지도록 마지막 문단에서 수필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를 담는다. (이 경우는 꼭 마지막 문단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논개는 애초의 계획대로 목숨을 바쳐 적장을 죽였으며, 그녀가 죽은 지 147년이 지난 영조 16년(1740), 조선 사람들은 촉석루 옆에 의기사(義妓祠)라는 사당을 짓고 추모비를 세웠다. 또 그녀가 투신한 바위를 의암(義巖)이라 부르게 되었다. 수필 초고가 완성되면 글을 시작할 때 임시로 붙였던 제목을 검토하여 글과 잘 맞는 신선한 제목을 붙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주제와 소재가 좋아도 문장이나 문단이 시원치 않으면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 없다. 논개가 적장과 함께 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치밀한 준비와 거침없는 행동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주제에 해당하는 곧은 의지를 갖췄어도, 문장에 속하는 어여쁜 단장을 하지 않았다면 왜장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녀가 힘센 왜장을 이길 수는 없으므로 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깍지를 껴서 왜장을 끌어안지 않았다면, 물속에서 손이 풀어져 자신만 죽고 왜장은 살아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곧 문단의 결속이 보여주는 힘이라 생각된다.

1973년 일본인 건축설계사 우에쓰카 하쿠유라는 사람이 진주를 찾아왔다. 이유인 즉 '신의 칼' 이란 별명을 가졌고 임진전쟁 때 승승장구한 전설의 사무라이가, 명성에 걸맞지 않은 죽임을 당했다고 여긴 것이다. 자신은 논개를 존경하는 일본인으로서 한‧일간 역사적 화해와 교류증진을 위해, 영혼들의 원풀이를 해주고 싶다며,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져 일본으로 모셔가는 의식을 치렀다. 남강에 국화를 뿌리고 천 마리의 종이학을 띄웠다.

그 뒤 그는 진주에서 가져간 나무, 흙, 모래 등으로 게아무라의 사당 옆에 논개의 무덤을 꾸미고, 그들을 영혼결혼시켜 보수원에 게아무라 부인과 처제의 영정 옆, 첩의 위치에 논개의 영정을 세워놓았다. 이래서 일본인 중에는 논개는 일본 장군을 사랑하여 첩이 된 조선 여인이고, 부부금실을 좋게 하는 섹스의 신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단다. 후에 우리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회수했지만.

수필도 그렇다. 작가의 의도는 따로 있는데 독자는 전혀 다르게 읽는 경우가 있다. 물론 건전한 다의적 해석이 된다면 성공한 작품이겠지만 왜곡된 해석을 하게 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더러 결말을 독자에게 주어 자유로운 감상을 유도하는 경우는 있지만, 작가가 진솔하게 쓴 글을 일부 독자가 다르게 읽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논개가 게아무라의 첩으로 둔갑하듯이.

해서 논개수필은 논개가 조선을 침략한 일본 장군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부분에서 끝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녀가 계획하고 행동하였듯이 침착하게 골격을 세워 수필을 완성했으면 싶다. 그리하면 그녀처럼 의기는 못되어도 최소한 함량 미달의 수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논개처럼 수필을 쓰자.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침착했던 스무 살 논개처럼. (2014)

(5매, 2014 창작수필동인지, 문협겨울, 상상의힘 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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