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엄마
상태바
다정한 엄마
  • 김지안/ 수필가(수필예술 회원)
  • 승인 2017.08.31 0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과 대형마트에 장보러 갔다.

딸이 "아기가 시식의 개념을 알더라."한다. 아기가 만두 시식 코너에 가자고 하니까 엄마가 "오늘은 만두 시식 안 해."하니 알아듣더라는 것이다.

"딱해라. 나라면 엄마가 집에 가서 만두 맛있게 해줄게, 하며 한 봉지 옛다 하고 안겨줄 텐데." 딸에게 말하자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아기가 시식의 개념을 아는 것이 신통하기보다 엄마가 만두를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나쳐버린 것이 안쓰러웠다.

다음날 딸은 교수님과 교수님의 아홉 살 딸과 함께 쌀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젊은 교수님은 의외로 몹시 보수적이고(정치적으로도 극보수다), 딸에게 엄한 것 같다고 한다. 음식이 많아 남을 것 같은데 아빠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먹기에 대신 이야기해주었다는 것이다.

"너 혼나기 직전이야!"

국수를 먹는 옆 테이블 주부가 어린 아들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그녀는 아이가 음식을 흘린다고 짜증을 부렸다. 야구 모자를 쓴 귀엽고 조그만 아이는 주눅 들어 있었다. “아주 귀여운 아이였는데.” 딸은 말했다. 보지도 못한 아이가 나도 딱해졌다. 딸로선 그런 장면이 놀라웠던 모양이다.

‘요즘 아이들’은 그래도 행복하다.

우리가 어릴 땐 왜 그리 어른들이 때렸던지. 친구와 대화하다가 문득 그 이야기가 나왔다. 시험을 봐서 90점을 받으면 백점을 못 받았다고 맞았다 한다. 집에서 부모님들이 훈육을 이유로 때렸고, 학교에서도 시험을 보고 나면 커트라인을 정해 놓고 일정 점수 이하로 때렸다. 일명 ‘보리타작’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흔히 맞고 살았다. 여학교 다닐 때에도 선생님이 처녀가 된 예민한 여학생들을 출석부로 머리를 갈기거나 뺨을 때리는 일이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대화로 설득하고 온화하게 타이르는 일을 본 적이나 겪은 적이 얼마나 있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도 학교 다닐 때 매 타작을 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유감의 글이 있다. 그는 학교라는 조직 자체에조차 별 호감이 없는 듯했다.

나는 어릴 때 어떤 이유에서건(사실 그리 맞을 만한 이유도 아니었다), 맞으면 굉장하게 자존심이 상하고 내부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일그러지며 손상되는 느낌을 받았다.

    

때리는 것도 싫어한다.

딸이 4,5살 무렵 이를 닦지 않고 밉살스럽게 도망 다녀 붙잡아 파리채로 엉덩이를 때린 적이 있다. 살을 때리는 느낌에 움찔했다. "네가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때려서 미안해. 용서해줘." 밤에 나란히 누워 사과했더니 어린 꼬마가 "그래." 하며 흔쾌히 용서해줬다. 이후론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다.

종아리를 때려 놓고 돌아서서 상처를 만지며 함께 껴안고 우는, 그런 낯 뜨거운 드라마는 찍고 싶지 않았다. 성년의 자식을 때렸다면 그는 자식으로서의 예의로 '맞아준' 것이다. 말로 안 되는 일이 매를 댄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매를 대어서 해결이 된다면 그도 역시 문제다.

요즘 청소년들은 그때의 우리보다 훨씬 좋은 대접을 받고 사는데도 남녀 불문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욕이 일상화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신조어도 욕을 연상시킨다. 씹덕, 핵발리다, 개좋다…. 설마 욕을 한다고 두들겨 맞지 않고 자라 그런 것은 아니리라. 어릴 때부터 겪어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의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때리고 맞아서 좋을(?)일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인생 살다보면 이처럼 난폭한 대우도 받는구나 하는 내공을 쌓는 것 외에 모욕적인 상처에 불과하다. 물론, 나는 맞아서 정신 차리고 개과천선하여 훌륭한 인간이 되었다는 이가 있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내 생각은 이렇다는 것이다.

함께 살 때 많이 사랑하자. 축적된 사랑으로 배가 불러 어디로든 담대하게 떠날 수 있고, 마음에 보물을 쌓아 둔 사람처럼 그 사랑의 동력으로 밝게 용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일찍 여읜 아버지의 자리를 어머니가 채워야 했으므로 어머니도 부재중이었다. 시장에 엄마를 따라 가서 옥수수를 사 먹었다거나 하는 따스한 추억이란 한 점도 없다. 이십 대엔 날개 아래 바람 같은 이가 없어 고단했다. 사막의 시절이었다. 그 사막을 홀로 걸어 온 나는 강한가?

내가 날개 아래 바람이 되어줄 차례다. 받은 것이 신통치 않아도-그 또한 최선의 것이었으리라- 내 차례가 되었으므로 주어야 한다. 내가 바람이 되어주면 언제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높이 날아가서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

나는 다정한 엄마. 은신처같이, 고향같이. 다정한 엄마가 인생에 해롭진 않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목민(牧民)의 방법을 알고 실천한 안철수 의원
  • 대통령 윤석열이여, 더 이상 이재명의 꼼수에 속지 말라
  •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를 먼저 보라
  • 천하장사, 이봉걸 투병 후원회 동참
  • 세종시(을) 강준현 후보여 떳떳하면 직접 검찰에 고발하라
  • 제22대 총선의 결과와 방향은?
    • 본사 : 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234 (르네상스 501호)
    • Tel : 044-865-0255
    • Fax : 044-865-0257
    • 서울취재본부 :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2877-12,2층(전원말안길2)
    • Tel : 010-2497-2923
    • 대전본사 :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룡로 150번길 63 (201호)
    • Tel : 042-224-5005
    • Fax : 042-224-1199
    • 공주취재본부 : 공주시 관골1길42 2층
    • Tel : 041-881-0255
    • Fax : 041-855-2884
    • 중부취재본부 : 경기도 평택시 현신2길 1-32
    • Tel : 031-618-7323
    • 부산취재본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안로 90-4
    • Tel : 051-531-4476
    • 전북취재본부 : 전북 전주시 완산동 안터5길 22
    • Tel : 063-288-3756
    • 법인명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 제호 : 세종TV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2
    • 등록일 : 2012-05-03
    • 발행일 : 2012-05-03
    • 회장 : 김선용
    • 상임부회장 : 신명근
    • 대표이사: 배영래
    • 발행인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대전지부
    • 편집인 : 김용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규
    • Copyright © 2024 세종TV.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e129@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