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계좌
상태바
감정 계좌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7.09.14 0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文 熙 鳳(시인·평론가

사랑이 가득한 사회를 꿈꾼다. 웃음이 가득한 사회를 꿈꾼다. 믿음이 상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모두가 바라는 이상 사회다.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믿었던 사람이 발등을 찍는 사건이 발생해도 그런 사람들보다는 가슴이 따스한 사람들이 더 많기에 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것이다.

건배 구호 중에 ‘일십백천만’이란 것이 있다. “하루 한 번 이상 착한 일을 하고, 열 번 이상 칭찬하고, 백 자 이상 글로 쓰고, 천 자 이상 읽고, 만 보 이상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의 구호다. 매우 이상적인 건배구호라는 생각이다. 선창자가 ‘일십백’하면 동지들이 ‘천만’을 외친다. 이렇게 세 번을 합창하면 술자리는 흥이 돌아 분위기가 고조된다. 하루하루가 좋게 변화하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긍정적 감정으로 개설된 계좌를 한 칸씩 채워 가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람들은 한두 개 이상씩 은행 계좌를 개설해놓고 산다. 그 중에는 실명계좌도 있고, 차명계좌도 있다. 차명계좌보다야 실명계좌가 좋다. 어둔 곳보다는 밝은 곳이 좋다. 계좌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통장 속에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할 수 있는 돈이 들어있다면 마음도 풍족하다. 끼니 걱정 아니 하고 이웃집에 돌 빌리러 다니지 않음은 축복이다. 넉넉한 돈이 있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다. 비록 돈은 적더라도 마음이 동(動)하면 베푼다. “부자가 많이 베풀고, 빈자가 적게 베푼다.”는 원리는 어느 사전에도, 참고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돈 이외의 것을 예금할 수 있는 계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뜻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예금할 수 있는 계좌, 이웃을 배려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예금할 수 있는 계좌,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잘못을 하나씩 하나씩 예금할 수 있는 계좌, 상대방을 칭찬하고 격려하는데 필요한 내용들을 예금할 수 있는 계좌 등을 개설해 놓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 이웃들 중에는 그런 통장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은 영광이고 축복이다. 그들로 하여 십여 분 만남의 자리를 통해, 몇 시간 만남의 자리를 통해 나는 금전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을 얻는다.

한참 전 교파를 떠나 모두의 추앙을 받고 있던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善終)하셨다. 선종 후 우리들의 마음 씀씀이가 인간에 대한 희망과 신뢰로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아 흡족한 기분이다. 원래 우리 가슴은 그렇게 메말랐던 게 아니다. 이제 본성을 되찾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선종하면서 남기신 “너무 과분한 은총을 받았다. 정말 감사하다. 서로 사랑하라.”란 말씀이 가슴을 적신다. 그리고는 각막을 기증하여 두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하였다. 그러한 일을 통해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잃어버린 내면의 눈을 다시 찾는 기쁨을 누렸다. 추기경님으로 하여 어려운 시기이지만 장기기증자가 보통 때의 30배로 늘어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증온도가 아직도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빨리빨리로 유명한 우리 국민이 1~2분 동안 김 추기경님을 조문하기 위해 찬바람이 부는 곳에서 3시간 동안을 기꺼이 서 있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차(茶)를 나르는 봉사자가 생겼다. 서로를 배려하는 애틋한 마음들을 보여주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난방비를 걱정하고 아이들 성적 때문에 소리를 지를 사람들이다.

추기경님의 장례식을 치루기까지 닷새 동안 명동은 천국의 한 자락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잃어버린 우리들 안의 천국을 추기경님의 죽음이, 아니 죽음으로 완성된 삶이 일깨워 주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그의 이름은 따스함, 가난, 혹은 사랑이 아닐까? 그의 이름은 희망이다. 우리는 그를 보내고 그런 것을 얻었다. 그는 돈이 들어 있는 예금통장 하나 없이 살았지만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도 따스한 통장을 너무나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풍성한 감정 계좌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긍정적 감정으로 하루 몇 칸씩 통장의 칸을 채워가는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음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리라.

부정적 감정은 모두 버리고 오늘도 건배 구호는 ‘일십백천만’으로 했으면 좋겠다.

나도 이웃과 사회를 따스하게 하는 감정계좌를 채워가는 데 인색하지 않으리라. 따스한 사회는 마음만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목민(牧民)의 방법을 알고 실천한 안철수 의원
  • 대통령 윤석열이여, 더 이상 이재명의 꼼수에 속지 말라
  •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를 먼저 보라
  • 천하장사, 이봉걸 투병 후원회 동참
  • 세종시(을) 강준현 후보여 떳떳하면 직접 검찰에 고발하라
  • 제22대 총선의 결과와 방향은?
    • 본사 : 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234 (르네상스 501호)
    • Tel : 044-865-0255
    • Fax : 044-865-0257
    • 서울취재본부 :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2877-12,2층(전원말안길2)
    • Tel : 010-2497-2923
    • 대전본사 :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룡로 150번길 63 (201호)
    • Tel : 042-224-5005
    • Fax : 042-224-1199
    • 공주취재본부 : 공주시 관골1길42 2층
    • Tel : 041-881-0255
    • Fax : 041-855-2884
    • 중부취재본부 : 경기도 평택시 현신2길 1-32
    • Tel : 031-618-7323
    • 부산취재본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안로 90-4
    • Tel : 051-531-4476
    • 전북취재본부 : 전북 전주시 완산동 안터5길 22
    • Tel : 063-288-3756
    • 법인명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 제호 : 세종TV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2
    • 등록일 : 2012-05-03
    • 발행일 : 2012-05-03
    • 회장 : 김선용
    • 상임부회장 : 신명근
    • 대표이사: 배영래
    • 발행인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대전지부
    • 편집인 : 김용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규
    • Copyright © 2024 세종TV.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e129@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