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에 오르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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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에 오르는 까닭
  • 文 熙 鳳 (시인·평론가)
  • 승인 2017.09.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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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熙 鳳 (시인·평론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산행을 한다. 모임에서 가는 대로 따라간다. 어떤 때는 걸어서 가기도 하고, 자가용 몇 대에 나누어 타고 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관광버스에 몸을 싣기도 한다.

서너 시간 산을 타고 나면 몸은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져 하늘을 날 것만 같다. 산을 타면서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머리까지 깨끗해진다. 전 날 먹은 알코올 기가 모두 빠져 나간다. 생의 활력을 다시 찾게 해준다. 그런 매력이 있기에 모임에서 산행을 하는 날이면 큰 일이 아니면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덕분에 크고 작은 산을 많이 섭렵했다.

산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오를 때마다 감흥이 다르다. 낭송할 시를 손에 쥐고 외우면서 산을 오른다. 시를 외우다 보면 그 시인의 내면세계에 푹 빠져 내가 그 시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창공을 훨훨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된 느낌을 받는다.

발밑에 스프링을 단 듯 새벽 산행은 언제나 상쾌한 느낌을 준다. 돌아오는 길에는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햇살과 교우하는 영광도 얻는다.

인간사는 굴곡의 도로를 걷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평지만 걷다 보면 나태해질 수 있지만 높이가 있는 산을 오르다 보면 가쁜 숨도 내쉬어야 하고, 여러 근육을 움직이는 효과도 실감한다. 그래서 평지만 걷지 말고 가끔은 산도 타라 이르는가 보다.

나는 산에 오르면서 산을 배운다. 넉넉한 가슴을 만든다.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 겸손을 배운다. 산에 가면 힘이 솟는다. 산의 정기를 받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함에 내 몸도 따라 변한다.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변한다. 산을 오르는 매력이다. 그렇게 되도록 산은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산을 오르면서 인자무적이란 단어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다 보면 산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다. 이른 아침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나뭇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를 듣는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는 사뭇 격이 다르다. 암흑의 공간에서 나뭇잎에 듣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검은 거죽을 벗겨내면서 싱그러운 율동을 보이는 산을 볼 수 있음은 크나큰 행운이다. 움직이는 산을 볼 수 있음은 크나큰 행운이다. 그런 율동을 보며 산소리, 바람소리에 몸을 맡긴다.

한낮 산을 오르면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산을 본다. 살랑이는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을 본다. 다람쥐와 함께 하는 도토리나무, 까치와 함께하는 키 큰 나무를 본다. 상부상조하는 그들을 보며 마음을 추스린다.

삼복더위에 움직이는 산을 본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산을 오르면서 듣게 되는 계곡물 소리는 내가 신령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빽빽이 들어찬 온갖 나무와 넝쿨들, 그리고 키를 훌쩍 넘는 으악새며, 갖가지 이름 모를 식물들이 저마다 푸르름 뽐내며 자라고 있는 산에 오른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험하다. 험한 길을 다독이며 정상까지 오르다 보면 많은 땀을 흘리게 되고, 심박동의 횟수가 빨라지면서 가쁜 숨을 내쉬게 된다. 내 몸 속의 노폐물들이 하나둘씩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숨도 거칠게 내쉬고 안정적으로 내쉬고를 반복하는 것이 폐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사계절을 먹는다. 계절을 피부로, 마음으로, 눈과 코로 마시며 산다.

봄은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와 열아홉 처녀 같은 철쭉을 만나게 한다. 나무를 움트게 하고, 새싹에게 용기를 주어 세상 구경하게 하고, 마지막 잎새를 그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한다.

여름은 푸르디푸른 녹음과 교우할 수 있다. 자연과 친구할 수 있음도 또한 행운이다. 여름은 나에게 펄떡거리는 용기를 주고, 가능성을 주고, 인내를 주고, 희망을 준다.

가을은 여러 열매들과 만날 수 있게 한다. 노력한 만큼의 소출이 돌아옴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과욕은 신물을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과욕, 과식, 과신에서 볼 수 있듯이 ‘과(過)’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신병 앓듯 나뭇잎 벌겋게 타오르면 나도 가을에 물드는 영광을 안는다.

겨울은 이 세상의 잡다한 모든 걸 덮고 새로운 것들과 만나게 한다. 모든 지저분한 것들과 결별하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산이 주는 매력이다.

산에 오르는 일은 혼자 하면 힘이 든다. 여럿이 하면 재미있다.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화려한 축제처럼 즐겁고 행복하다. 비를 맞으면서 올라도, 바위에서 미끌어져도 잡아주는 손이 있으면 산행은 즐겁고 행복하다.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배우고, 물을 보고 맑음을 배우고, 어린이를 보고 천진을 배우고, 어른을 보고 존경을 배운다. 높은 산을 보고 기상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피상의 앎은 될지언정 진정한 깨달음은 되지 못한다.

산에 오르는 날은 솔바람 소리를 한 움큼 집어가지고 집으로 온다. 그리고는 서랍 속에다 넣어두고 조금씩 조금씩 마신다. 나만이 즐기는 산소 흡입법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웃음은 너무 시원하고 산뜻하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많이 배낭에 담는다. 산은 인간에게 무한한 아름다움과 지혜를 심어주고 있다.

산에 오르면 너무도 엄청난 분량의 자유 앞에 고마움을 느낀다. 산에 오르는 동안만이라도 속세의 멍에를 벗어던져 선거사범(仙居思凡)이 되는 영광을 누린다.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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