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을 끄고 누웠어. 불현듯 할머니가 영정사진 찍던 날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어. 따스했어. 밝고 맑았어. 고요했어. 새소리가 들렸어. 하늘은 파란 보자기처럼 펼쳐져 있었어.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어.
너른 흙 마당, 병풍 속 하얀 종이정원에 검은 눈물로 피어난 난초 앞에 앉아, 쪽진 머리 늙은 은비녀 한 번, 고운 저고리 은빛 고름 한 번, 새색시마냥 매무새 가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을 아빠는 슬프게 바라보았어.다 됐남유.다 됐슈.
검은 머리에 주름 없이 고왔을 할머니의 젊은 날은 아빠의 기억에만 있겠지. 아빠는 병풍 앞에 앉아 영정사진 찍은 엄마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겠지. 마음이 저렸겠지. 울었겠지.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던, 치마 끝을 붙들고 놀던, 온 세상이 엄마이던 꼬맹이가 열 살 된 아빠의 막내아들보다도 작았던 시절의 꼬맹이 아빠가,엄니는 늙어도 죽지 마유.
다짐받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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