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에도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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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에도 꽃은 핀다
  • 문희봉(시인·평론가)
  • 승인 2017.12.1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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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봉(시인·평론가)  

지난 봄 매화가지에 핀 꽃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수령 수십 년 된 고목 매화였다. 지금도 ‘어린 매화에 핀 꽃보다 아름다웠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 고목에 핀 꽃이 더 아름다웠다. 인간은 어떤가? 인간도 그러하리라.

그의 안면은 세월이 할퀴고 지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보기 흉한 모습이 아니고 연륜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인자하고 복스럽고 순후한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 모습에서 그간 살아온 모습을 되새길 수 있었다. 평화롭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에서 아주 멋지게 살아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손에서도 장인匠人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아름답게 새겨진 주름에서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손으로 만들어낸, 일구어낸 것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손으로 피워 올린 꽃, 익혀 올린 열매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그의 나이 산수를 넘겼다. 일구어낸 것들의 충실도를 생각해 본다. 고목에서 피워 올린 꽃을 보고 그의 과거를 되짚어 본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람의 나이란 정신적인 것이다.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은 언제나 청춘이다. 그는 누구의 삶이든 참고 기다리고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는 사람이다. 늙은 말이라고 여물만 축내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다.

흔히 ‘고목에서 피워낸 꽃들이 오죽하랴.’라고 생각한다. 그건 편견이다. 오해다. 그냥 흘러버린 세월이 아니다. 그 세월이 만들어낸 것들은 그의 자서전을 이루었다. 그의 모든 것들이 그 속에 용해되어 있다. 고목에서 피워올린 꽃, 정말 아름답다.

사람을 사귈 때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벌집에 손을 집어넣는 것과 같다. 팔십 줄 인생은 백전노장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황혼을 만난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깃발 펄럭이던 보통사람들의 청춘은 추억으로 변질되고 가슴에는 회한과 아픔만 남는다. 아무리 노년의 즐거움과 여유를 강조해도 우리들 가슴에는 낙조의 쓸쓸함을 지울 수가 없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자연스런 노화현상으로 신체의 어느 부분 또는 모두가 옛날 같지 않다. 삼삼오오 허물 없이 모이는 자리에선 화제가 건강이다. 그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나의 청춘만은 영원하리라 믿었는데 어느새 고개 숙인 남자의 대열에 끼이게 된다. 노년은 쾌락(탐욕)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덕의 근원인 그로부터 해방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고대 로마의 대 철학자 지케로가 죽기 전에 쓴 ‘노년에 대하여’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끓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던 돈, 명예, 술, 이성, 사치 등의 유혹에서 과연 우리 노인들은 버림 받은 것일까? 해방된 것일까?

생로병사의 순리에 따라 우리가 좀 늙었을 뿐 그 기능이 한계에 이른 것일 뿐,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해답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버림받은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는 나이에 이르렀다. 남의 눈치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원숙의 경지에서 더 이상 잘난 체, 아는 체, 가진 체할 필요 없이 마음 편히 내 멋대로 살면 되는 것을, 어느 한 곳이 불능이래도 다른 곳 다 건강하니 축복이고 은혜라 여기며 살자고 자신과 약속한다.

스스로 절망과 무기력의 틀 속에 가두어 두지 말고 어느 곳에 있을 자신의 용도, 즐거움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인생은 80부터, 고목에도 꽃이 핀다.’ 했는데 그까짓 회춘回春이라 하는 것이 안 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걷고 뛰고 산을 오르면서 젊은 생각으로 산다면 인생 80에는 연장전 10~20년이 더 추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을 배운다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들을 배운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걸 연륜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자유롭고 여유 있고 슬기로운 해방의 시기를 즐기며 사느냐, 울며 얼굴 찡그리며 사느냐는 바로 나의 몫이고 당신의 선택이다. 고목에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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