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하나만이 아니라 ‘존엄’이라는 인물의 행동과 초상이 함께 뜬다. 매스 게임형태의 군사퍼레이드가 빠짐없이 동행한다. 거기에다 양각된 선대지도자의 잔영이 히틀러의 역 만자를 연상시키는 망령 노릇을 저지르기도 한다.
붉은 광장에 새빨간 유니폼을 입고 로봇 행진하는 기계군인 앞에는 으레 신형유도탄 무기라는 게 클로즈업되어 전율감을 북돋운다. 이 장면이 그래서 전쟁놀이 애호가의 취향을 물씬 풍긴다. 전쟁숭배국가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또한 살벌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우수한 장치미술공예가 한껏 재주를 부리며 연출능력을 과시한다. 그게 바로 이 나라 명문방송국의 자료화면이다. 얼마나 궁색하고 어설픈 데이터 베이스이기에 하고 많은 날 이 영상만 내보내기에 열성을 다 하고 있나.
북녘 얘기가 나올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염치없이 치맛바람 훌렁이듯 그 고귀한 화면을 더럽히는가. KBS나 YTN, 뉴스Y나 TV조선 할 것 없이 몽땅 이 화면에 대한 집착은 ‘마르고 닳도록’인 듯하다. 언제나 똑같은 양의 시간과 사진을 내보내 시청자의 눈을 아프게 하니 말이다.
하나하나 프로그램의 시간별 주제별 분류를 하기에는 정력과 시간과 양심이 아깝다. 화면의 자료구성만이 아니라 초대하는 평론가의 배치마저도 자기도취의 편협성이 극심하게 나타난다. 정곡을 찌르는 평자의 혀끝은 때로 듣는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 주는 수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TV방송에는 그게 없다.
나이 어린 대한민국 괴물투수 유현진의 완봉승은 다저스타디움에서 흥분한 관중의 가슴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런 열광과 환희를 기대한 야구팬의 만족감은 대한남아의 역투에서 얻은 영광이다. 이런 평론이 있어야 애국도 가능하다. 방송도 이 점에서 동류이다.
그러건만 이 나라 TV방송국은 지겨울 정도로 길고 잦은 광고로 돈벌이를 잘 하고 있으면서 자료화면 준비하기에는 가난뱅이 이상으로 돈쓰기 어려운 지 그 알량한 인공기 장면만 죽으나 사나 지탱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고 불쌍하다.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인공기만 날리느라 허겁지겁하는가.
게다가 저쪽 방송이 날이 날마다 극악한 욕지거리 말로 우리의 대통령을 능멸하며 싸움질하자고 덤벼드는 판에 곧 죽어도 버리지 못하는 남쪽 방송인의 말투 ‘×××위원장’은 진짜 뭣 같은 ×들의 버르장머리가 아닌가. 입버릇이 되었으니 고치기도 어려운가 보다.
인공기 날리고 전쟁무장한 화면이 뜰 때면 그에 따른 대한민국 관련 자료화면은 별 볼일 없는 것들로 채워진다. ‘김정은보다 작게 보이도록 꾸며진 박근혜’ 화면이 드물지 않고 ‘태극기보다 더 크고 멋진 인공기’가 하늘 높이 휘날리는 장면은 더 흔하다. 이래야 되는가.
바글바글 악을 쓰는 북녘은 ‘북한’이고 슬슬 점잖은 소리만 하는 남녘은 ‘남쪽 정부’라는 쫄망이 기자들이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통에 히히하고 웃기만 하는 허드레 국민은 마냥 무신경 무벌점 무덤덤이로 허망하게 나자빠지는 “약자여 그대 이름 대한민국이여!”가 아니고 뭔가. 무말랭이만도 못 한지고.
그러니 아무래도 이 땅의 언론, 아니 TV방송은 한참 불그레하니 익어가는 앵도가 아니런가 묻고 싶다. 필경 시침 떼고 딴전 부릴 게 뻔하지만 통일이니 북한학이니를 앞세우고 너스레를 피우는 위인들이 정녕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저들이 뭘 안다고 설치는가 말이다.
그 뿐인가. ‘북한은 오늘’ 또는 ‘북한의 창’이라는 미명으로 프로그램을 위장하고 이북선전에 급급한 방송종사자들의 행태도 이 나라에 조그마치나마 이익이 되는 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누가 그토록 애태워 북쪽을 알고 싶어 하는가. 정작 향수의 수혜자는 재고처리감이 된 지 오래이다. 허튼 수작에 몰두하다 정작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이 다시 올까 두렵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