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방남’이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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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방남’이 무언가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 승인 2018.02.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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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언어는 인간의 독점 전유물이다.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 언어는 인간만이 사용할 줄 안다. 여타 동생물도 물론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고는 있다. 허나 사람이 쓰는 말과 글 같은 건 없다. 벌은 날개 짓으로 방향과 장소와 거리를 알려 준다. 고래도 그 나름의 동작을 이용해서 의사 전달을 한다. 하등 동물에게 보디 랭귀지(Body language 몸짓언어)와 소통 음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새가 지저귀는 것도 의사전달방식이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다양하고 복잡한 의사전달체계를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남아프리카의 꼬리 긴 원숭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유형의 음성체계를 가지고 의사전달을 행사한다. 잘 길들여진 개나 원숭이도 그와 똑 같이 음성에 의한 의사전달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만은 유독 언어의 창조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나를 들으면 다른 하나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성장과정에서 습득하는 말과 글은 이른바 확대재생산의 신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인간은 무한한 언어의 영역을 개척하고 개발하고 개량하는 역량을 천부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말을 사전으로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얼마든지 만들어 쓴다. 왼 쪽 귀 바로 위의 뇌에 자리하고 있는 언어기관의 발달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를 다치면 벙어리가 되기 쉽다. 그러니 넘어져도 왼 쪽은 안 된다(웃).

좌우간 요즈음 디지털세대들이 즐기는 휴대전화를 비롯해 전자기기를 이용하는 언어가 일반인의 언어감각에 혼란을 불러온다.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말을 알아듣기에 힘이 든다. 무작정 줄임말이 특히 젊은 학생들 사이에 거래된다. 80대 아날로그 세대의 고령자들이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다닐 때 일본어와 우리말을 거꾸로 섞어 써서 일본인 선생들을 골탕 먹였듯이 하고 있다. 그만큼 언어의 영역이 확대되기도 한 것이지만 정통언어의 체계와 질서가 무너져 가는 현상이 소름끼친다. 무섭다. 머리가 빙빙 돈다.

 

게다가 신문 방송에서 어설프게 쓰고 있는 외래어의 홍수에는 거부감이 생긴다. 컨셉(concept)이니 아이템이니 하는 영어가 우리말을 압도 한다. 걸핏하면 기업의 CEO가 어떠냐, 한국은 컨텐츠 빈국이 아닌가, 방송모니터링을 잘 해봐라 등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용어들이 난무한다. 공개토론 광장을 뜻하는 포럼이란 말 때문에 권선택 대전시장이 중도하차의 비운을 맞은 일도 있다. 요즈음 시큰둥하니 ‘미투’에 시달리는 연예계의 엔터테인먼트는 일상용어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의 지도정보 용어인 내비게이션은 ‘네비게이션이나 네비’로 엉뚱한 철자를 함부로 간판에 써 붙이고 있다. 이런 게 무지하게 많다. 진저리 날 정도이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신조어가 도깨비처럼 나타났다. 송혜월, 김영남, 김여정, 심지어 김영철이 우리나라에 온 것을 ‘방남’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우리나라 사전에 이 단어가 있는지 궁금하다. 으레 북한에 간다는 말을 ‘방북’이라고 써왔다. 그러기에 남한에 온다는 뜻으로 쓴 게 ‘방남’인 모양이다. 남쪽을 방문한다는 글자로만 해석하면 별 볼일이 아닐 게다. 허나 다른 외국인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방문할 때에는 반드시 ‘방한’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웬 놈의 ‘방남’인가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을 걸핏하면 ‘괴뢰’ 운운하며 번질나게 욕을 해대는 김정은 노예공화국의 인물들이 ‘남한’에 내려온다고 방정맞게 떠드는 꼴이 아닌가.

    

 

신조어(coinage)의 대가는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이다. 이 위대한 작가는 영어의 철자를 뒤집어 놓기도 하고 단어의 어미를 다른 걸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주석을 봐야 해독이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방남’은 대한민국 국민의 심기를 예리한 칼로 후벼 놓는 짓이다. 아무리 행운아 대통령 문재인이라 하더라도 ‘방남’이라는 신조어의 생산자라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어야한다. 힘든 삼수결행 끝에 얻은 동계올림픽 주최국의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갖게 된 게 본시 자기 몫이 아니라는 함의를 들어내는 ‘방남’ 신조어 신세가 처량하다,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기왕에 써먹은 ‘북미 대화’ 같은 말 역시 살갗을 시리게 하는 말투이다. ‘미북 대화’라는 용어가 우리에게는 훨씬 수용하기 좋은 말이 아닌가. 진즉에 나 자신은 ‘미북 대화’라고 써왔다. 앞서의 칼럼 여러 군데에서 ‘미북 ... ’을 고집스레 적어왔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가 사설의 제목에 모처럼 ‘미북 대화’라는 용어를 동원했다. 반가웠다. 비록 늦게나마 제 정신을 차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전대협 출신 각료참모가 득실거리는 판국이라 ‘북미 ... ’가 제격인양 크게 쓰이는 참에 그나마 용기 있는 표현을 보니 기쁘다. ‘북’을 앞세우고 아양 떠는 시늉에 바쁜 위인들의 신조어를 당장 치워버리는 게 미래지향적 행위가 아닐까 싶다. 부디 그러기 바란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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