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닮은 사람
상태바
연필을 닮은 사람
  • 文 熙 鳳연필을 ·평시인론가
  • 승인 2018.03.01 2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文 熙 鳳연필을 ·평시인론가

연필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볼펜이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 만년필이 더 좋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연필이 좋다. 유년시절에 손을 베어가면서 깎아 쓰던 추억이 서린 물건이어서만은 아니다. 연필은 칼로 깎고, 닳으면 또 깎아 쓴다. 연필은 원통 모양도 있고, 육각 모양도 있다. 연필의 꼭대기엔 지우개도 달려 있다. 쓰기 쉽고, 지우기 쉽고, 계산할 때도 용이하게 사용된다.

내가 어렸을 때의 꿈은 면서기였다. 우리 면에서 그래도 정장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면사무소. 그곳에 들르면 나도 저런 의자에 앉아 보아야지 했었다. 연필과 가까이 하면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재주가 나에게 있음을 알려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 손과 같은 존재를 나는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분은 언제나 나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연필은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깎아야 할 때가 있다. 깎아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다.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것이 연필이라 생각했다. 삶은 세상이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니던가. 그 선물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베풀고 잘해 주어야 추앙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패하거나 시행착오를 겪었을 때는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것이 좋다. 반대로 마음먹은 일을 해냈을 때는 자신을 칭찬해주면 좋다. 자신을 격려하는 사람은 내면의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다. 대개의 경우 자신을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다.

연필은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우개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 준다. 볼펜이나 만년필로 쓴 글씨는 지울 수가 없다. 두 줄 긋고 정정할 수는 있지만 지우개만큼 확실하게 지워주지는 않는다. 지운 자국에 큰 흠집을 남긴다.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다. 그 심은 중심을 잡아주고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사람을 평가할 때 외양으로 평가하지 않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향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는 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화려한 의상을 하고 있어도 상스러운 언어를 사용한다든가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하게 되면 금방 저질 인간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과자봉지에 찍힌 유효기간을 통해 나 자신의 유효기간도 생각해봐야겠다. 유효기간이 지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거울은 말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단지 비춰보이기만 하는데 그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되겠다.

어떤 이가 회사의 해고 통고를 받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는데, 그를 맞이한 것은 낮게 가라앉은 회색빛 하늘과 진눈깨비였다는데, 그는 그 현상을 절망으로 맞지 않고 희망으로 맞았다고 한다. 겉으로는 세상을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텐데 그걸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성공했다 한다.

연필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진한 볼펜이나 만년필 같은 것이 될 필요는 없다. 지워질 듯하면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 흔적을 나는 좋아한다. 유연하면서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인생을 연필은 희원하고 있다. 인생작품은 자기를 죽여 창조해내는 피땀어린 자기의 분신이다. 허허당의 시에 이런 시구가 있다.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고, 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는다.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그렇다.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은 없다. 상처뿐인 영광은 말고, 상처를 간직한 영광은 후세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한테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 아닌가.

밖엔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 땀처럼 한 장 남은 낙엽이 바람에 떨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목민(牧民)의 방법을 알고 실천한 안철수 의원
  •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를 먼저 보라
  • 대통령 윤석열이여, 더 이상 이재명의 꼼수에 속지 말라
  • 천하장사, 이봉걸 투병 후원회 동참
  • 세종시(을) 강준현 후보여 떳떳하면 직접 검찰에 고발하라
  • 제22대 총선의 결과와 방향은?
    • 본사 : 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234 (르네상스 501호)
    • Tel : 044-865-0255
    • Fax : 044-865-0257
    • 서울취재본부 :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2877-12,2층(전원말안길2)
    • Tel : 010-2497-2923
    • 대전본사 :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룡로 150번길 63 (201호)
    • Tel : 042-224-5005
    • Fax : 042-224-1199
    • 공주취재본부 : 공주시 관골1길42 2층
    • Tel : 041-881-0255
    • Fax : 041-855-2884
    • 중부취재본부 : 경기도 평택시 현신2길 1-32
    • Tel : 031-618-7323
    • 부산취재본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안로 90-4
    • Tel : 051-531-4476
    • 전북취재본부 : 전북 전주시 완산동 안터5길 22
    • Tel : 063-288-3756
    • 법인명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 제호 : 세종TV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2
    • 등록일 : 2012-05-03
    • 발행일 : 2012-05-03
    • 회장 : 김선용
    • 상임부회장 : 신명근
    • 대표이사: 배영래
    • 발행인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대전지부
    • 편집인 : 김용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규
    • Copyright © 2024 세종TV.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e129@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