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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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수록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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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0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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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닫혔던 대화통로가 느닷없이 열렸다. 이른바 남북 간의 단절됐던 대화채널이 복원된 것이다. 엊그제 현충일에 북쪽의 텔레비전방송이 뜬금없는 제의를 내놓았다. 자주 빛 수츠차림의 마네킹 여성 아나운서가 ‘조평통 대변인의 특별담화’를 독특한 톤으로 방송했다. 깜짝쇼 같은 뉴스였다.

우리 방송국들은 속보형식으로 이 사실을 전하기에 분주했다. ‘개성공업지구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북남 당국사이의 회담’을 제의하면서 ‘필요하다면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문제도 협의’할 수 있고 6.15와 7.4공동선언 발표의 기념행사도 갖자고 하는 내용을 서둘러 보도했다.

그러자 언론매체는 화급한 보도경쟁과 선도평가에 분망한 참에 ‘현충일의 낭보’라는 헤드를 내걸고 작약하는 신문도 나타났다. 아무리 기뻐도 눈이 뒤집혀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만해도 ‘교활한 술책’이니 남조선과 주변지역의 전쟁수단 전면철수‘니 하면서 우리의 대화제의를 거부했던 북의 폄하술수를 망각하고 서둘러 엉뚱한 소리를 해댄 게 아닌가 싶다.

신문방송업체만 ‘빨리빨리’하느라 발바닥에 땀나는 건 아니었다. 정부도 그랬다. 아무리 ‘속전속결’이 좋다 해도 국가적 정책전략 문제에 성급한 진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과 몇 시간의 고민과 회의 끝에 북에 보내는 회답을 내놓은 방법은 초등학교 교실의 학급회의 장면을 연상케 했다. 빨간 넥타이 차림의 통일부장관이 북의 제의에 보내는 원고를 읽는 ‘브리핑 룸’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었기에 더 그랬다.

기왕 ‘브리핑 룸’말이 나왔으니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자. 미국의 국무부 대변인은 대형 성조기가 당당하게 서있는 브리핑 룸에 한 번도 초조하거나 우울한 표정 없이 발표대에 자리해서 차분하게 설명하는 여유를 누린다. 중국의 대변인도 진홍색 오성기가 자랑스러운 듯한
브리핑 자세로 대인 품위를 보이듯 발표한다. 일본만 해도 일장기에 정중히 인사를 먼저 하고 기자들을 압도하듯 의젓하게 지껄인다.

우리와 사뭇 다르다. 우리의 브리핑 룸은 규모도 인테리어 데코레이션을 비롯해서 작고 어설프다. 태극기도 중소기업체의 강당에 걸려 있는 것만도 못해 보인다. 중후하고 화려한 외국의 브리핑 룸 배경화에 비해 겨우 ‘무궁화테두리에 정부’라는 글자가 박힌 소형배지를 넘어선 정도의 것이 허멀건 색깔의 커튼 같은 물건에 붙여놓은 인상을 준다. 이런 브리핑 룸은 어느 전임 대통령인가가 기자석까지 막아버린 만용에서 얻어진 게 아닌가.
  
그건 그렇다 치고 대화재개야 물론 환영할 일이다. 북이 말하는 ‘북남 당국’이든 ‘괴뢰와 공화국’의 회담이든 상호이해와 상생발전을 전제로 할 때 무조건 수용해야 할 민족적 대사임은 틀림없다. 북이 그토록 강조하는 ‘우리민족끼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갈협박에다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를 서슴지 않은 그들의 진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진리를 까먹지 말아야한다.

    

장관급회담을 서울에서 열자는 우리의 제의를 발표하는 류길재 장관의 시진과 북의 여성 아나운서 사진이 한 화면에 나란히 실려 시청자의 눈을 어리둥절케도 했다. 텔레비전방송국의 편집방식마저 서두느라 정말 제멋대로, 꼼수대로 한 모양이다. 이렇게 허겁지겁할 정도의 뉴스이고 행사라면 더더욱 조급성에 시달리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바늘허리에 실을 뀔 참인가.

아무리 신속하고 민첩하게 일을 처리한다 해도 떠져야 할 것은 치밀하고 정확하게 따지고 선후를 가려서 결정하는 신중성과 신축성이 필요하다.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속답을 하는 게 옛날 ‘반공 멸공’을 전제로 한 ‘즉각박살’의 살기라면 그건 결코 권장사항이 아니다. 중국이 이제 G2로 올라선다는 예측이 나온다. ‘만만디’가 그런 파워, 저런 이노베이션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대통령이 행복을 느끼는 남북대화의 재개가 아무쪼록 ‘행복한 성취’를 선물하기 바라는 게 국민의 마음이다. 이런 일에 대통령이 무엇보다 새겨둘 선조들의 가르침이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명언이다. 영국인들도 일찍이 비슷한 지혜를 일러주었다. “급히 먹는 밥에 체한다 Haste makes waste”고 타이른 것이다. 서둘면 그르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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